새마을 人터뷰 ②
손끝으로 빚고
진심으로 잇는 시간
서울 성북구부녀회
한가위를 앞둔 9월의 어느 날. 도심 속 전통문화 체험 공간 성북예향재는 환한 웃음소리로 가득찼다.
성북구부녀회가 결혼이민여성들과 함께 송편을 빚으며 국적과 문화를 넘어 마음을 나누는 따뜻한 자리가 마련된 것이다.
손끝에서 빚어진 송편에는 정성과 웃음이 담겼고, 전통의 멋과 맛을 함께 즐기며 모두가 하나 되는 시간을 만들었다.
이날의 풍경은 마치 새벽종이 울려 퍼지듯, 함께한 이들의 마음마다 따스한 울림을 전해주었다.
글. 장희주 사진. 전경민
함께 즐긴 전통문화 체험의 자리
그 어느 때보다 특별한 날, 성북예향재에는 곱게 한복을 차려입은 부녀회원들 하나둘 모여들었다. 오랜만의 만남에 반가운 인사와 웃음소리가 오가며 공간은 금세 따뜻한 활기로 채워졌다. 고즈넉한 한옥의 분위기 속에서 다가올 한가위를 기다리는 설렘도 한층 깊어졌다.
이날 행사는 부녀회원들과 결혼이민여성들이 함께 송편을 빚으며 한국의 전통문화를 체험하기 위해 마련됐다. 성북구부녀회가 매년 정성을 기울여 준비해 온 대표 행사로, 전국 새마을 조직이 결혼이민여성과의 교류를 활발히 이어가던 시기에 시작해 지금까지 꾸준히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송편 만들기에 앞서 결혼이민여성들은 예향재에서 준비한 ‘이화 문양 자개 노리개 만들기’ 체험에 참여했다. 박선희 강사가 자개 노리개의 의미와 한국 전통문화 속의 상징성을 설명하자, 결혼이 민여성들은 처음 접하는 듯 반짝이는 눈빛으로 귀를 기울였다. 노리개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전통 의복 속에 담긴 소망과 아름다움의 상징임을 알게 되자, 표정에는 작은 놀라움과 흥미가 스며들었다.
이내 본격적인 노리개 만들기가 시작됐다. 서로 마주 앉은 이들은 가느다란 끈을 매만지고 반짝이는 자개조각을 하나하나 붙여 나가며 점차 몰입해 갔다. 서툰 손길이었지만 정성 어린 마음이 담긴 작업이 이어졌고, 마침내 완성된 자개 노리개를 손에 들었을 때, 얼굴 가득 뿌듯한 미소가 번졌다.
성북구에서 함께 빚어낸 정(情)
자개 노리개 만들기를 마친 뒤, 본격적인 송편 빚기가 시작됐다. 이른 아침부터 반죽을 치대고 콩고물까지 정성껏 준비한 성북구 부녀회와 결혼이민여성들은 둥글둥글 송편을 빚으며 명절의 손맛과 즐거움을 함께 나눴다.
이번 행사를 준비한 최필금 부녀회장은 고향 가족과 떨어져 외로운 명절을 보내는 이들의 마음을 헤아리듯 온 정성을 다해 준비했다고 전했다.
“명절이면 고향이 더 그리울 거예요. 저 역시 서울에 처음 올라왔을 때, 한가위 하늘만 봐도 부모님이 생각나 눈물이 날 때가 많았어요. 오늘은 성북구부녀회가 고향처럼 따뜻한 자리가 되어주고 싶었어요.”
송편 빚는 자리에는 금세 웃음과 격려가 오갔다. 반죽을 오물오물 빚어내는 사이, “송편을 예쁘게 만들면 예쁜 아기를 낳는다”는 속설이 전해졌고, “아이고, 참 예쁘게도 빚었네” 라는 칭찬이 곳곳에서 흘러나왔다. 또 다른 이는 “안 예쁘게 빚어도 괜찮아요. 마음 가는 대로 빚어보세요”라며 분위기를 한층 부드럽게 만들었다. 따뜻한 말과 웃음 속에서 알록달록한 송편은 정성스럽게 완성돼 갔다.
이날 행사에는 이승로 성북구청장도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이 구청장은 “오늘 이 자리가 모두에게 따뜻한 추억이 되길 바란다”라며 결혼이민여성들에게 응원의 말을 전했다.
능숙한 손길과 서툰 손길이 어우러져 빚어진 송편이 하나둘 완성됐다. 직접 찐 송편을 함께 나누어 먹으며 행사는 마무리되었고, 그 맛은 단순한 명절 음식이 아닌 서로의 마음이 오간 소중한 흔적이었다.
헌신과 봉사 그리고 단합으로 만든 힘
성북구부녀회는 최필금 회장을 중심으로 20개 동 회장과 420여 명의 지도자들이 함께하고 있다. 이들은 결혼이민여성들과 함께하는 한가위 행사를 비롯해 전통시장 장바구니 사용 캠페인, 에너지 절약 캠페인, 하천 및 환경 정화 활동, 구청 축제 먹을거리 부스 운영 등 다양한 사업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들의 손길은 이웃의 식탁까지 닿는다. 홀몸 어르신이나 취약계층을 위한 밑반찬 나눔 활동이 그 대표적 사례다.
최 회장은 “취약계층이나 어르신들을 위해 반찬을 만들어 드리고, 여름철에는 동별로 삼계탕 나눔 행사를 해요. 삼계탕만이 아니라 떡이랑 김치까지 함께 준비하다 보니 꼬박 사흘이 걸리기도 해요. 힘들지만 정성껏 준비한 음식을 드시고 ‘너무 행복하다’고 말씀하실 때면, 그간의 수고가 모두 보람으로 바뀝니다. 성북구부녀회가 정말 자랑스럽죠”라며 미소를 지었다.
그는 성북구부녀회의 가장 큰 자랑으로 ‘단합력’을 꼽는다.
“어떤 사업을 진행하든 20개 동부녀회가 나서 땀 흘리며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큰 행사가 있을 때마다 제일 먼저 앞장서는 것도 성북구부녀회예요. 그래서인지 애국심과 지역을 사랑하는 마음도 남다릅니다.” 서로의 마음을 모아 움직일 때 느껴지는 힘이야말로 성북구부녀회를 든든히 지탱하는 뿌리라는 것이다.
헌신과 봉사는 성북구부녀회의 저력인 동시에 최필금 회장의 삶 그 자체이기도 하다. 그는 40여 년 동안 고려대학교 앞에서 하숙집을 운영하며 지금도 100여 명의 학생을 돌보고 있다.
“<생활의 달인>에 ‘전설의 하숙집’이라는 이름으로 출연한 적도 있어요. 지금도 학생들을 위해 하루 세 끼를 챙기죠. 힘들지만 행복합니다. 그 행복한 마음으로 봉사를 이어가고 싶어요. 앞으로도 학생뿐 아니라 더 많은 이웃을 위해, 새마을 활동을 통해 봉사하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그의 바람은 구체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성북구에 ‘새마을 공유주방’을 마련해 홀몸 어르신께 따뜻한 한 끼를 대접하고, 결혼이민여성에게는 일상의 쉼터를 제공하고 싶다는 것이다. 또한 함께 담근 김치와 반찬을 판매해 얻은 수익을 다시 어려운 이웃을 돕는 선순환을 꿈꾼다. 성북구부녀회의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언제나 사람과 사람이 이어지고, 따뜻한 나눔이 피어난다. 한 끼의 밥상, 작은 정성,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는 단합의 힘이 모두의 삶을 더 풍요롭게 한다. 그리고 그 힘은 최필금 회장과 성북구부녀회의 뜨거운 열정 속에서 앞으로도 더 많은 이웃의 마음을 밝히는 빛으로 이어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