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마을-ing ③

글. 장준철
국제협력국 국제사업팀장





파푸아뉴기니에서 만난
새마을운동의 다음 50년


물길이 놓이고 집이 바뀌는 사이, 주민들의 삶에도 변화가 시작됐다. 파푸아뉴기니에서 만난 새마을운동은 이제 생활환경 개선을 넘어 주민의 참여와 자립, 국가 차원의 마을개발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5km를 걷지 않아도 되는 마을

지난 7월 26일부터 27일까지 최형재 사무총장을 비롯한 새마을운동중앙회 임직원 출장단이 파푸아뉴기니 이스턴 하이랜드 주의 새마을운동 시범마을인 파고노피, 카페투구, 카무페레, 민다를 찾았다. 마을 어귀에 들어서자 주민들은 출장단을 맞으며 “할 수 있다(We can do it)”는 구호를 함께 외쳤다.
파고노피 마을은 그동안 식수를 얻기 위해 인근 강까지 왕복 5km를 걸어야 했다. 새마을운동 시범마을 사업을 통해 산 정상 인근 수원지에서 마을까지 총 10km의 파이프를 연결하면서, 800여 가구의 주민 모두가 집 앞에서 안전한 물을 얻을 수 있게 됐다. 이 공사는 중앙회의 자재 지원만으로 완성된 것이 아니다. 파이프를 묻는 데 주민들이 노동력을 보탰고, 토지도 직접 내어놓았다.
한 여성 주민은 “5km를 걸어 물을 길어오는 일은 대대로 이어져 온 우리 마을의 숙명과 같은 일이었는데, 이제는 그 일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오랜 세월 이어진 일상이 바뀌었다는 점에서 새마을운동이 만들어낸 변화의 의미를 보여주는 한마디였다.
카페투구 마을에서는 우기마다 빗물이 새어 들어오던 전통주택 28채가 새롭게 단장됐다. 새마을 지원금으로 지붕과 기둥을 마련하고, 마을 목수와 주민들이 벽과 실내 공간을 직접 완성했다. 한 주민은 “지붕과 기둥 자재만 지원받았을 뿐, 벽과 실내는 우리 손으로 직접 지었다”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작은 지원이 큰 결과를 낳는 이유

이스턴하이랜드 주정부도 두 마을에 각각 약 1만 9천 키나(약 630만 원)를 지원했다. 한국의 지원에 지방정부의 예산, 주민들의 노동력과 토지·자재가 더해지면서 작은 지원은 마을의 삶을 바꾸는 큰 변화로 이어졌다. 이러한 방식은 ‘지원하는 쪽’이 모든 것을 떠안고 ‘지원받는 쪽’이 그저 기다리는 구조와는 다르다. 완성된 결과물을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대신 각 주체가 자신의 몫을 보태고, 주민들이 변화의 과정에 직접 참여해 사업을 완성해 가는 방식이다. 주민의 참여와 자립을 이끌어내는 새마을운동의 지속가능한 농촌개발 ODA 모델을 보여주는 사례다. 카페투구 마을 지도자 시로스 사이코리(Siros Saikori, 46세)는 “새마을운동이 도입되자 도박과 같은 악습이 점차 사라지고, 여성들의 참여가 눈에 띄게 늘었다”고 전했다. 생활 인프라가 개선되면서 주민들의 관심도 보다 생산적인 활동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날 출장단은 시범마을 아동 18명에게 국내 새마을지도자들이 마련한 결연 후원금 540만 원을 전달했다. 후원금은 아이들의 학비와 책을 마련하는 데 쓰일 예정이다.

출장단을 환영하는 파고노피 마을 주민들





유선전화 없이 휴대폰을 든 사람들

파푸아뉴기니의 마을 곳곳에서는 흙길과 슬레이트·함석지붕, 마을회관에 모여 앉은 사람들의 모습 등 1970년대 새마을운동 초기 한국의 농촌 풍경을 떠올리게 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차이는 당시 한국에서는 볼 수 없었던 휴대폰이 주민들의 손에 들려 있었다. 유선전화 인프라는 충분하지 않지만, 이동통신은 이미 일상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러한 환경은 파푸아뉴기니 새마을운동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농산물 가격 정보를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소득사업의 회계를 투명하게 기록하며, 각지의 시범마을이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는 등 휴대폰을 활용한 다양한 활동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도로나 상수도와 같은 물리적 인프라 구축에는 오랜 시간과 많은 자원이 필요하지만, 이미 주민들의 손에 들려 있는 휴대폰은 마을과 마을, 주민과 사업을 연결하는 새로운 통로가 될 수 있다.
새마을운동 역시 물리적 인프라 구축을 넘어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주민 역량 강화로 영역을 넓혀갈 필요가 있다. 정보 접근성을 높이고 마을 간 교류를 활성화하는 것은 파푸아뉴기니 새마을운동이 앞으로 풀어가야 할 과제다.






다음 50년을 그리며

반세기 넘게 이어져 온 새마을운동이 이제 파푸아뉴기니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2025년 파푸아뉴기니 정부는 새마을운동을 국가마을발전모델로 공식 채택했고, 같은 해 11월 기본법 개정을 통해 전국 6,912개 마을에 각 3만 키나(약 800만 원)를 지원할 법적근거도 마련했다.
이스턴하이랜드에서 시작된 씨앗은 이미 이스트세픽, 엥가, 걸프, 헬라, 웨스턴 등 5개 주로 확산됐으며, 정부는 이를 22개 주 전역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이제 새마을운동은 파푸아뉴기니가 스스로 법과 예산을 마련해 추진하는 국가 차원의 마을개발 모델로 발전하고 있다.
중앙회는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다음 단계를 준비하고 있다. 현재 4곳인 시범마을을 약 100곳까지 확대하기 위해 한국농어촌공사와 함께 파푸아뉴기니 대상 KOICA 공공협력사업을 신청해 심사를 받고 있다. 그 과정에서 중앙회가 교육을, 농촌진흥청이 농업기술을, KOICA가 마을 단위 사업을 맡는 역할 분담 모델을 추진할 예정이다.
마을에서 시작된 새마을운동이 국가 정책으로 발전하고, 다시 지역 협력사업으로 확장되는 흐름은 양국이 현지 주민들과 함께 쌓아온 신뢰와 협력의 결실이기도 하다. 정부의 정책적 지원과 한국의 협력,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결합한 농촌개발 ODA 모델이 더 넓은 지역으로 확산될 가능성을 보여주는 새로운 출발점이 되고 있다.

시범마을 아동 결연 후원금 전달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