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백서
글. 편집실

알고 보면 더 재미있는
가을 풍경 속 비밀
오감(五感)을 이토록 풍성하게 깨우는 계절이 또 있을까. 높고 깊어진 하늘, 색색으로 옷을 갈아입은 단풍, 귓가를 스치는 바람과 바스락대는 낙엽 소리. 코끝을 강렬하게 스치는 은행 열매 냄새마저 가을이 왔음을 속삭인다. 그런데 이 다채로운 풍경 속에는 뜻밖에도 정교한 과학의 비밀이 숨어 있다. 가을이 한 걸음 더 멀어지기 전에 눈부신 계절을 더욱 흥미롭게 만드는 이야기들을 하나씩 풀어보자.
가을 하늘은 왜 유독 높고 푸르게 느껴질까?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는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 예로부터 청명하고 드높은 하늘은 가을을 대표하는 풍경으로 여겨져 왔다. 그렇다면 왜 가을 하늘은 유난히 더 높고 푸르게 느껴지는 걸까. 비밀은 ‘빛의 산란’에 있다. 산란이란 태양 빛이 대기 중의 질소나 산소 같은 기체 분자와 부딪히며 사방으로 퍼지는 현상이다. 이때 파장이 짧은 파란빛은 붉은빛보다 더 많이 산란하기 때문에 우리 눈에는 하늘이 푸르게 보인다. 우리가 매일 올려다보는 파란 하늘도 결국 태양 빛과 지구의 대기가 만들어낸 풍경인 셈이다. 가을에는 건조하고 맑은 날이 많아지면서 대기 중 수증기와 미세한 입자의 영향을 비교적 덜 받아 하늘의 푸른 빛이 더욱 선명하게 느껴진다. 이동성 고기압의 영향으로 구름이 적고 시야가 탁 트이는 날이 많아지는 것도 한몫한다. 그래서 같은 파란 하늘이라도 가을이면 유독 맑고 깊은 인상을 준다. 실제 하늘이 더 높아지는 것은 아니지만, 맑고 투명한 대기 덕분에 시야가 멀리까지 이어지면서 한층 더 높고 푸른 하늘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가을 단풍은 겨울나기를 위한 생존 전략?
가을이 오면 여름 내내 푸르름을 자랑하던 나무들이 하나둘 옷을 갈아입는다. 세상을 온통 울긋불긋 물들이는 단풍은 가을풍경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인공이다. 그렇다면 나뭇잎은 왜 가을마다 색색으로 물드는 걸까. 나무의 잎에는 광합성에 필요한 녹색 색소인 ‘엽록소’가 풍부하게 들어 있다. 하지만 낮의 길이가 짧아지고 기온이 내려가면 나무는 겨울을 준비하며 잎의 활동을 서서히 줄이고, 엽록소도 점차 분해된다. 녹색이 사라지면서 잎 속에 있던 카로티노이드의 노란색과 주황색이 드러나고, 일부 나무에서는 안토시아닌이 만들어져 붉은빛을 띤다. 나무마다 지닌 색소의 종류와 양이 달라 노랗고 붉은 단풍이 한데 어우러진 다채로운 가을 풍경이 만들어진다. 이 과정에서 나무는 잎에 남아 있는 영양분을 줄기와 뿌리로 되돌려 보내 다음 계절을 준비한다. 화려하게 물든 잎 아래에서는 겨울을 견디기 위한 준비가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아름답다고 보는 단풍은 사실 나무가 잎을 떠나보내며 긴 겨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빚어지는 풍경인 셈이다.
은행나무에서는 왜 고약한 냄새가 날까?
가을 길목에서 코끝을 강렬하게 자극하는 은행 열매. 절로 피하게 되는 지독한 냄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냄새가 퍼져야 비로소 가을을 실감하곤 한다. 그렇다면 은행에서는 왜 이렇게 고약한 냄새가 나는 걸까. 사실 냄새의 주인공은 흔히 은행 열매라고 부르는 씨앗의 말랑한 겉씨껍질이다. 씨앗이 익어 땅에 떨어지고 무르면서 부티르산과 헥산산 같은 휘발성 성분이 퍼져 특유의 냄새를 풍긴다. 특히 땅에 떨어진 씨앗이 사람이나 자동차에 밟히면 겉씨껍질이 터지면서 냄새가 더욱 강하게 퍼진다. 악취 때문에 눈총을 받기도 하지만 알고 보면 은행나무는 도시에서 제 몫을 톡톡히 하는 나무다. 대기오염과 병충해에 강하고 황금빛 단풍까지 선사해 도심 가로수로 널리 활용돼 왔다. 거리 곳곳을 노랗게 물들이는 아름다운 풍경 뒤에 이런 반전이 숨어 있는 셈이다. 다만 은행알을 먹을 때는 주의가 필요하다. 과다 섭취할 경우 구토나 경련을 일으킬 수 있는 독성 성분이 들어 있어 가을의 별미라 해도 한꺼번에 많이 먹지 않는 것이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