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마을 人터뷰 ②

세상 가장 따뜻한 손수레를 끌고,
마음을 나누는 부부

경북 영주시새마을회
이대성·황영숙 지도자 부부

가진 것이 많아 부자인 사람도 있지만, 가진 것을 나누어 마음이 부자인 사람도 있다.
이대성·황영숙 지도자 부부는 폐지를 주워 모은 돈으로 자신들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돕는 진정한 마음의 부자다.
누군가에겐 작고 보잘것없을지라도 그들에게는 세상을 향한 사랑의 표현이자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방식이다.
돈이 아닌 마음으로 살아가는 삶, 그 조용한 선행이 오늘도 누군가의 하루를 따뜻하게 밝힌다.


글. 장희주 사진. 김병구

버려진 것에서 마음을 줍는 부부

이른 아침 8시 30분, 이대성·황영숙 부부의 하루가 시작된다. 두 사람은 손수레를 끌고 영주시 원당로 일대 골목을 천천히 돌며 골목 어귀마다 쌓인 폐지와 버려진 상자, 빈 병과 고철을 하나하나 정성스레 챙겨 담는다. 누군가에게는 버려진 물건이지만 이 부부에게는 소중한 자원이다. 그렇게 부부는 동네를 돌며 조금씩 그러나 꾸준히 삶의 무게를 손수레에 실어 나른다. 그들을 위해 누군가는 상자에 붙은 테이프를 미리 떼어내고 상자를 납작하게 접어 깔끔하게 포개 둔다. 부부는 그 작은 배려에도 고개 숙여 “고맙습니다”라며 인사한다. 많이 모은 날이면 손수레 한 대에 실린 폐지만 해도 400킬로그램에 달하지만 둘이 함께라면 세상의 무게도 한결 가벼워진다.
하루 대부분을 나란히 보내는 두 사람은 그야말로 ‘완벽한 한 팀’이다. 이대성 지도자는 손수레 앞에서 묵직한 짐의 균형을 잡아 끌고 황영숙 지도자는 뒤에서 산처럼 쌓인 폐지가 흘러내리지 않게 꼼꼼히 받쳐 든다. 손수레에 짐을 싣는 손놀림에도 세월이 빚은 호흡이 자연스럽게 배어 있다. 굵은 끈을 손수레에 감아 단단히 묶은 뒤 이대성 지도자가 그 끈을 아내에게 건네면 황영숙 지도자는 그것을 받아 고리에 걸고 다시 남편에게 되돌려준다. 끈 하나를 주고받는 그 순간에도 서로의 손끝이, 시선이, 그리고 마음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진다.
그렇게 온종일 일해 손에 쥔 돈은 고작 2만 원 남짓. 하지만 부부는 그 돈을 자신들을 위해 쓰지 않는다. 모은 수입은 ‘전부’ 인근 주민센터와 장학회 등에 기부하고 생활은 오로지 기초생활수급자로서 받는 생계급여로만 이어간다. 작은 집에서 부부는 최소한의 생활비로 하루를 꾸려 간다. 누군가에게는 작고 소박한 삶처럼 보일지 몰라도 이대성·황영숙 지도자 부부에게 그것은 ‘가장 넉넉한 삶의 방식’이다.

받은 만큼, 다시 세상으로

이대성·황영숙 지도자 부부가 기부를 시작한 지는 어느덧 15년이 넘었다. 두 사람이 그렇게까지 ‘주는 삶’을 선택한 건 언젠가 자신들도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폐지를 줍기 전, 부부는 시장에서 배추와 고사리 같은 농산물을 팔며 살았다. 땅도 있었고, 집도 있었다. 하지만 사업에 실패한 동생의 빚보증을 섰다가 하루아침에 모든 걸 잃었다. 남은 건 6천만 원이 넘는 빚뿐이었다. 그 빚을 갚으며 살아온 세월이 길었지만 부부는 단 한 번도 기부를 멈춘 적이 없었다. “우리도 도움을 받았으니까요.” 부부는 담담히 그렇게 말한다.
빚더미에 오를 무렵 막 중학생이던 아들은 늘 전교 1~2등을 할 만큼 성실한 아이였다. 그러나 형편이 갑자기 어려워지자 부부는 아이의 학업을 이어가게 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그때 손을 내밀어준 곳이 바로 영주의 ‘항소장학문화재단’이었다. 아들은 재단의 장학금을 받으며 무사히 대학까지 마쳤고 지금은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다.
그 고마움 때문에 그들에게 기부란 남을 돕는 일이 아니라 한때 자신들이 받았던 온기를 세상에 되돌려주는 일이다. 받은 도움에 감사할 줄 알고 그 고마움을 다시 세상에 돌려주는 부부. 이대성·황영숙 지도자 부부의 조용한 선행은 어느새 많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들의 이야기가 알려지면서, 2024년에는 KT그룹 희망나눔재단으로부터 ‘희망나눔인상’을, 2025년에는 경찰청과 조선일보가 공동으로 주관하는 ‘제59회 청룡봉사상 인(仁)상’, 그리고 같은 해 GS칼텍스의 ‘참사람상’을 연이어 수상했다.
하지만 부부는 상을 받았다고 해서 특별한 마음을 품지 않는다. “그걸 자랑스럽게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냥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에요”라고 말할 뿐이다. 그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묵묵히 이어가는 것, 그것이 두 사람에게는 가장 자연스러운 삶의 방식이다.
그래서 그들의 기부는 앞으로도 멈추지 않을 예정이다. 지금까지 부부가 기부한 금액은 어느덧 2천만 원을 훌쩍 넘어섰다. 그동안의 정성은 영주시 인재육성장학금과 청소년 보호관찰소, 지역 김장 나눔 행사 등으로 이어졌다. 이 가운데 장학금만 약 1,900만 원에 달하며 청소년 지원과 김장 나눔 등 봉사 활동을 모두 합치면 총 2천만 원 이 훌쩍 넘는다. 이대성 지도자는 “앞으로는 인재육성장학금만이라도 3천만 원까지 채워보고 싶어요”라며 환하게 웃었다.

폐지를 주워 모은 돈으로 다른 이들을 돕는 이대성·황영숙 지도자 부부

새마을정신으로 살아가는 부부

이대성·황영숙 지도자 부부는 온종일 폐지를 줍고 선행을 이어가면서도 영주시새마을회 지도자로서 오랜 시간 지역을 위해 봉사해 왔다. “처음엔 누가 같이 해보자고 해서, 뭘 하는지도 모르고 시작했어요. 그런데 어느덧 20년이 다 돼 가네요.” 이대성 지도자는 웃으며 지난 시간을 떠올린다.
부부는 바쁜 일상에서도 틈틈이 마을의 풀을 베고 방역 활동에도 나선다. “우리가 바쁘니까 다른 분들이 더 많이 하죠. 그래도 저는 방역 기계가 있으니까 시장 안을 돌며 방역도 해요.” 그의 말처럼 두 사람의 하루는 늘 분주하지만 그 발걸음에는 새마을 정신처럼 언제나 ‘함께 사는 세상’을 향한 마음이 담겨 있다.
이런 진심 어린 나눔은 지역 사회에도 오래도록 귀감이 되고 있다. “두 분은 정말 우리 새마을회의 자랑이에요.” 인터뷰 현장을 지켜보던 우영선 영주시새마을회 회장이 부부의 오랜 선행을 자랑스럽게 말했다.
평생을 이렇게 살아온 이들이지만 거창한 꿈 같은 건 없다. 남은 여생도 그저 지금처럼 누군가를 돕고 기부하며 살아가고 싶을 뿐이다. 굳이 꿈을 꼽자면 “조금이라도 더 많은 금액을 기부하는 것” 그게 이대성·황영숙 부부가 바라는 삶의 전부다.
그렇게 부부는 오늘도 손수레를 끌고 영주시 원당로 골목 어귀마다 놓인 폐지를 주우러 나선다. 좁은 골목을 가르며 나아가는 두 사람의 얼굴에는 세월이 새긴 주름이 고요히 빛난다. 그 주름은 고단함의 흔적이 아니라 나눔과 감사로 살아온 이들의 얼굴에만 피어나는 가장 환한 미소다. 그렇게 오늘도 부부의 손수레는 세상 가장 따뜻한 마음을 싣고 천천히 골목을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