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마을 人터뷰 ①

마을을 밝히고 온기를 더하는
태안군의 등불들

충남 태안군지회

충남 태안군지회의 하루는 해가 뜨기 전, 아직 별빛이 남아 있는 새벽부터 시작된다.
고요한 농촌 마을의 공기를 가르며 회원들이 하나둘 골목길로 나서고 누군가는 논두렁과 밭고랑에 버려진 쓰레기를 줍는다.
또 누군가는 오랜 세월 쌓인 어르신 댁의 묵은 자취를 정성껏 치운다.
‘별 보고 나와 별 보고 들어간다’는 우스갯소리가 결코 과장이 아니다.
그렇게 긴 하루가 저물 무렵, 태안군지회 회원들이 다녀간 자리에는 깨끗함이 피어나고, 사람들 사이에는 따뜻한 온기가 번져간다.


글. 장희주 사진. 전경민

월 1회, 마을을 빛나게 하는 다정한 손길

가을 햇살이 부드럽게 내려앉은 어느 날 오전, 태안군지회 회원들이 태안읍 다목적회관 앞으로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이날은 ‘농촌 쓰레기 수거의 날’로, 한 달에 한 번씩 8개 읍·면이 순차적으로 참여해 마을 곳곳의 쓰레기를 치우고 환경을 정화하는 날이었다. 갑자기 서늘해진 공기에 회원들은 두꺼운 옷깃을 여몄지만 그들의 얼굴에는 오히려 따뜻한 미소가 번져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모인 회원들은 짧은 회의를 마친 뒤, 각자 맡은 구역을 배정받아 마을 구석구석으로 흩어졌다. 누군가는 하천을 따라 걸었고, 또 누군가는 굽이굽이 이어진 골목길로 향했다. 한 손에는 집게를, 또 다른 한 손에는 커다란 포대자루를 든 채 그들의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마을을 깨끗하게 가꾸는 손길이 이어졌다.




홀몸 어르신 가구의 쓰레기 수거

농촌 쓰레기 수거 사업은 태안의 아름다운 자연을 지키고 마을 곳곳에 방치된 생활 쓰레기를 정리하기 위한 작은 실천에서 시작됐다. 태안은 22개의 해수욕장과 수십 개의 항·포구, 그리고 우리나라 유일의 해안 국립공원인 태안해안국립공원이 자리한 곳으로 천혜의 자연이 숨 쉬는 고장이다. 사계절 내내 여행객이 찾는 아름다운 바다 도시이지만 그만큼 버려지는 쓰레기와 환경 부담도 크다. 이러한 부담은 결국 주민들의 몫으로 돌아온다. 관광지를 비롯해 논과 밭, 그리고 하천 주변에 버려지는 쓰레기는 미관을 해칠 뿐만 아니라 하천을 따라 바다로 흘러 들어가고 그 오염이 다시 우리의 밥상으로 돌아오는 악순환을 낳는다.
게다가 태안의 농촌 마을은 고령 인구가 많아 거점 수거장까지 쓰레기를 옮기기가 쉽지 않다. 임병윤 지회장은 “이 사업의 가장 큰 목적은 어르신들의 주거 환경 개선에 있다”라며, “어르신 중에는 쓰레기를 외부로 배출하기 어려운 분들이 많다 보니, 부득이하게 생활 쓰레기를 소각하는 일이 잦고 이로 인해 산불이나 인명 피해로 이어지는 일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래서 태안군지회가 직접 농촌 쓰레기를 수거해 어르신들의 생활 환경을 개선하고자 한다”며 사업의 취지를 덧붙였다. 이렇게 태안군지회의 손길은 해안가에서 마을 안으로 그리고 어르신들의 일상까지 이어지고 있다.
물론 태안군지회의 하루는 쓰레기 수거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어르신 인구가 많은 지역 특성상 부녀회에서는 홀몸 어르신을 1:1로 돌보며 수시로 안부를 살피고, 보이스피싱 등 금융 사기나 각종 위험 상황을 미리 예방할수 있도록 돕는다. 김장 나눔과 밑반찬 지원 같은 이웃 돌봄 활동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태안은 해안선이 길게 이어진 지역이다 보니 때때로 실종 신고나 자살 고위험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이 생기면 태안군지회는 경찰과 협력해 신속하게 수색에 나서며 지역 안전망 역할을 다한다. 최근에는 독립운동가 ‘우운 문양목’ 선생의 유해 봉안 사업을 주관하며 지역 역사 기념사업에도 힘을 보탰다. 마을을 지키는 일, 생명을 살피는 일, 그리고 역사를 잇는 일까지. 태안군지회의 손길은 그만큼 넓고 깊다.

홀몸 어르신 가구 마당 청소
마을 안길 쓰레기 줍기

구불구불 도랑길을 따라, 굽이굽이 마을까지

이날의 현장은 농촌 쓰레기 수거에 집중해 진행됐다. 세 팀으로 나누어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마을을 지켜냈다.
첫 번째 팀은 홀몸 어르신 두 가구를 방문해 주거 환경을 개선했다. 오랜 세월 쌓인 묵은 짐과 생활 쓰레기를 치우고 낡은 집 안을 정리하며 어르신이 조금이라도 더 쾌적한 공간에서 지낼 수 있도록 도왔다.
트럭에 필요한 장비를 싣고 구불구불한 도랑길을 따라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자 넓은 마당을 지닌 오래된 집이 모습을 드러냈다. 회원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어르신은 환한 미소로 이들을 맞이했다. 따뜻한 인사를 나눈 뒤 회원들은 각자의 역할을 찾아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집 뒤편에는 언제부터 쌓였는지 알 수 없는 생활 쓰레기와 낡은 짐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회원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말없이 장갑을 끼고 집 안의 묵은 짐을 하나씩 바깥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차례 짐을 나르자 잠시 후 1톤 트럭이 쓰레기로 가득 찼다.
두 번째와 세 번째 팀은 마을 주변의 논두렁과 밭고랑, 그리고 인근 산자락으로 향했다. 회원들은 집게와 포댓자루를 들고 여러 명이 한 조가 되어 마을 곳곳으로 흩어졌다. 논과 밭 사이에는 비닐 조각과 플라스틱, 병, 생활 쓰레기가 뒤섞여 있었고 산속에는 오랫동안 방치된 폐기물이 흩어져 있었다. 모두가 말없이 허리를 굽히고 집게를 든 손으로 하나하나 쓰레기를 주웠다. 혼자였다면 끝이 보이지 않았을 일도 태안군지회 회원들이 함께 힘을 모으니 어느새 깨끗한 풍경으로 변해갔다.

모은 농촌 쓰레기를 수거하는 차량
(왼쪽부터) 임병윤 지회장과 엄현숙 태안읍부녀회장, 전종선 태안읍협의회장

환경을 가꾸고, 사람을 잇는 새마을의 손길

지난해 시작된 농촌 쓰레기 수거 사업은 이제 10개월째를 맞았다. 10개월이라는 시간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그동안 태안의 농촌 마을은 눈에 띄게 깨끗해졌고 그보다 더 큰 변화는 ‘주민들의 마음’이었다. 임병윤 회장은 이 사업을 두고 “환경을 바꾸는 일인 동시에,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과정”이었다고 말한다.
“이 사업을 계기로 주민들의 의식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아무렇지 않게 쓰레기를 태우던 분들이 이제는 스스로 분리수거를 하세요. 조금씩 주인의식이 생기면서 마을 환경에도 관심을 갖게 된 거죠. 이런 변화가 태안군지회에 가장 큰 보람이자 힘이 됩니다.”
태안군지회는 마을 구석구석의 쓰레기를 치우는 일뿐 아니라 수거 이후의 체계적인 관리에도 힘을 쏟고 있다. 8개 읍·면별로 ‘공동집하장’을 운영하며 수거된 폐기물을 품목별로 분리·보관하고 숨은 자원을 재활용하는 체계를 꾸준히 구축해 왔다. 특히 이 공동집하장은 전국적으로 자원 회수율을 높이는 모범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회원들이 땀 흘려 모은 쓰레기 중 재활용 가능한 자원은 철과 플라스틱 등으로 분리되어 수익으로 이어지고 이렇게 얻은 금액은 다시 지역 복지와 나눔 봉사에 쓰인다. 태안군지회의 손끝에서 ‘환경보호’와 ‘이웃사랑’이 선순환하는 따뜻한 변화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태안군지회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내년에는 ‘숲 가꾸기 사업’을 통해 더 아름답고 건강한 마을을 만들기 위해 새로운 도전에 나설 예정이다.
“숲은 바람이 잘 통하고 햇빛이 적절히 스며들 때 가장 건강하게 자랍니다. 하지만 지금은 나무들이 지나치게 빽빽하게 자라, 통풍이 어렵고 병해충이 쉽게 번식하는 환경이에요. 그래서 숲 가꾸기를 통해 단순히 주변을 정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나무의 생육 환경을 개선하며 마을 전체의 경관을 한층 아름답게 가꿔 나가고자 합니다. 무엇보다 방문객 모두가 다시 찾고 싶은 마을을 만들고 싶습니다.”
이런 계획이 가능했던 건 하루아침의 일이 아니다. 수년간 현장을 지키며 묵묵히 마을을 가꿔온 회원들의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임병윤 회장은 회원들에게 언제나 감사함과 미안한 마음을 함께 품고 있다.
“좋은 국토와 건강한 마을을 만들기 위해 애쓰는 모든 회원분께 존경과 감사를 전합니다. 또한 태안군지회뿐만 아니라 전국의 새마을 가족들도 서로 나누고 소통하며 열린 봉사를 이어가길 바랍니다. 태안군지회도 앞으로 계속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임병윤 회장의 말처럼 태안군지회의 노력은 단순히 쓰레기를 치우는 일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더 깨끗한 환경을 만들고, 더 따뜻한 공동체를 세워가는 일이다. 별빛이 채 가시기 전부터 시작된 그들의 하루는 오늘도 누군가의 마을을 밝히며 사람들의 마음에 잔잔한 온기를 더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