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마을 人터뷰 ②
“우리 동네를 더 사랑하게 됐어요”
책으로 잇는 마을의 온기
제주 서귀포시
신머들새마을작은도서관
푸른 바다가 춤을 추는 제주도에서 새마을문고 제주 서귀포시지부(회장 송춘화)가 주최하고 대륜동분회 신머들새마을작은도서관(회장 김영실)이 주관한 ‘2025 독서퀴즈 한마당’이 열렸다. 제주 서귀포시의 매력을 가득 담은 다채로운 프로그램은 어린이와 학부모에게 세대를 초월한 즐거운 추억을 선사했다.
글. 최해진 사진. 한용환
돌무더기 위에 핀 새마을작은도서관
제주 서귀포시 HausD블루오션 207동 아파트 단지 사이에 자리잡은 ‘신머들새마을작은도서관’. 오전 내내 매섭게 몰아치던 비바람이 오후가 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 자취를 감췄다. 흠뻑 젖어 있던 야외 광장은 강렬한 햇살 아래 금세 바짝 말랐다. 오랫동안 준비해온 행사가 무산될까 노심초사하던 새마을 회원들의 얼굴에도 서서히 안도의 빛이 번졌다.
새마을문고 제주 서귀포시 대륜동분회 회장이자 신머들새마을 작은도서관의 회장을 맡고 있는 김영실 회장은 행사 준비로 분주한 회원들을 다정하게 격려하며 분위기를 이끌었다. 지금의 도서관 이름은 ‘돌무더기’를 뜻하는 제주 방언 ‘머들’에서 따왔다. 이름처럼 한때 사람보다 돌이 더 많던 이 마을은 여러 관공서와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며 어느새 신시가지로 탈바꿈했다.
제주 토박이보다 육지에서 온 외지인이 더 많아진 이곳. 제주를 잘 모르지만 알아가고 싶은 사람들, 육지의 인연을 뒤로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는 사람들, 함께 나누는 지적 교류를 갈망하는 사람들의 바람이 새마을문고 서귀포시지부에 닿았다. 그렇게 신머들새마을작은도서관이 아파트 숲 사이에 문을 열게 됐다.
도서관은 2018년 12월에 문을 열었지만, 코로나19 여파로 3년간 운영을 멈춰야 했다. 긴 공백 끝에 2023년 5월, 재개관을 앞두고 자원봉사자를 모집한다는 소식에 김영실 회장이 처음 발을 들였다. 거미줄이 얽혀 있던 건물과 수기로 남겨진 기록들 앞에서 막막함이 밀려왔지만, 서귀포시지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큰 힘이 됐다. 건물 개·보수와 함께 독서문화 활성화 프로그램도 적극
지원받을 수 있었고, 김 회장은 회원 두명과 함께 도서 목록과 대출기록을 모두 디지털화했다. 새로운 문화 프로그램을 본격적으로 기획할 수 있는 기반도 갖췄다.
제2의 집처럼 머물고 싶은 도서관
서울에서 살았던 김영실 회장도 은퇴 후 제주도에 정착한 이주민이다. 이웃들과 같은 사연을 품고 이 섬에 뿌리내렸기에, 주민들이 도서관에서 어떤 경험을 찾고 싶어 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우리나라 최남단 도시가 서귀포시입니다. 지리적 특성상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문화의 중심에서 자연스럽게 멀어질 수 밖에 없는 곳이에요. 디지털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챗GPT 다가가기’ 강의,
발레 강사를 초청해 간단한 동작을 배워보는 ‘책과 함께하는 발레 스트레칭’ 수업, ‘길따라 물따라’처럼 서귀포의 물길을 따라 동네를 탐방하며 이주민에게 제주 문화를 소개하는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고 있어요. 이주민에게는 제주를 소개하고, 원주민에게는 세상을 소개하는 그런 공간이 되길 바랍니다.”
과거의 도서관이 단순히 책을 보관하고 대출하던 ‘지식의 창고’였다면, 지금의 신머들새마을작은도서관은 문화와 삶이 오가는 ‘소통의 마루’로 확장되었다. 보통 도서관이 정숙을 요구한다면, 신머들새마을작은도서관에서는 마음껏 떠들며 토론할 수 있다. 안락의자가 놓인 3개의 방에서는 책을 읽다가 졸리면 눈을 붙일 수도 있고, 아이들이 장난감을 가지고 놀 수도 있다. 주방과 식탁도
갖춰져 있어 출출하면 간단한 식사도 가능하다. 신머들새마을작은도서관은 책을 읽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그저 마음 편히 들렀다 갈 수 있는 모두의 쉼터를 지향한다.
그럼에도 이날만큼은 도서관에 적잖은 긴장감이 감돌았다. 학부모와 어린이들은 독서퀴즈 한마당을 앞두고 출제 도서인 동화책 〈고래굴의 비밀: 신비의 섬 제주로 떠난 모험〉을 반복해 읽으며 서로 문제를 내고 맞추는 연습에 몰두했다. 제주 출신인 박재형 작가가 쓴 이 책은 제주도 전설과 설화를 모티브로 삼아, 제주의 풍습과 방언까지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어 교육적이다.
이날 작가와의 만남 행사에 참석한 박 작가는 “이 책이 독서퀴즈 한마당의 지정 도서로 선정되어 매우 기쁘다”며 “오늘 대회에 참가한 어린이들 모두 훌륭한 우리나라의 인재로 성장하리라 믿는다”고 따뜻한 응원의 말을 전했다.
함께라면 무엇이든 가능한 봉사의 힘
신머들새마을작은도서관에서 열린 ‘독서퀴즈 한마당’에는 보호자와 아이로 구성된 19팀이 참가했다. 치열한 예선을 뚫고 상위 6팀이 본선에 올랐으며, 100문제를 모두 풀 때까지도 승부가 나지 않을 정도로 막상막하의 접전이 이어졌다. 마침내 단 한 팀이 마지막 골든벨 문제를 단숨에 맞히며 최종 우승을 거머쥐었고, 참가자들과 도서관 회원들은 아낌없는 박수로 그 순간을 함께 축하했다.

퀴즈대회에 이어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도서관 앞 광장에서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투명한 부채 위에 스티커를 붙이고 그림을 그려 나만의 여름 부채를 만드는 체험, 재활용 유리병에 식물과 자갈을 담아 만드는 친환경 반려식물 화분 만들기, 고래와 나비를 얼굴에 그려주는 페이스 페인팅, 아크릴판에 직접 그림을 그려 나만의 무드 조명을 만드는 코너들로 구성된 체험
프로그램들이 어린이들의 눈빛을 반짝이게 만들었다.
맞은편 광장에서는 아이들의 “한 번 더!” 외침이 끊이지 않았다. 돌림판을 돌려서 나오는 항목대로 가위바위보, 주사위 던지기, 바구니에 공 넣기 게임 등을 진행자와 겨루고 이기면 상품을 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 큰 인기를 끌었다.
무엇보다 이런 즐거운 축제엔 먹을거리 부스가 가장 큰 인기다. 토스트, 소떡소떡, 아이스크림 등을 판매하는 코너는 문전성시였다. 한편에서는 안 쓰는 생활용품과 도서를 나누는 ‘아나바다(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는)’ 장터가 열렸다.
행사를 성공적으로 마친 김영실 회장은 회원들에게 공을 돌렸다. “젊은 엄마들이 아이들과 도서관에 오면서 조금씩 마음을 열고, 어느새 자원봉사로 이어지곤 해요. 이렇게 큰 행사가 있을 때면 흔쾌히 도와주셔서 늘 든든하죠. 오늘도 이렇게 많은 분이 한마음으로 힘을 보태주셔서 모든 일이 순조로웠습니다. 모두 정말 고맙습니다.” 작은 도서관에서 시작된 하루의 축제는 이렇듯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고 마을에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었다. 비록 짧은 하루였지만, 그 속에는 함께 웃고, 나누고, 돕는 공동체의 힘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신머들새마을작은도서관은 앞으로도 사람들의 일상에 소소하지만 깊은 감동을 더하는 제2의 안식처로 머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