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마을운동을 통해 희망을 나누는
우리들의 이야기
한국에서 김장은 특별한 행사다. 춥고 긴 겨울을 나기 위해 먹을 김치를 준비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김치는 사계절 언제나 담그지만 김장엔 이웃이 모여 김치를 담그고 나누는 공동체 문화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우리’, 그리고 ‘함께’의 의미를 그 누구보다 최고로 생각하고 또 그 문화에 매료되었다는 안양시새마을회 이정자 자문위원과
그의 며느리 크리스티나 씨를 김장 활동에서 만났다.
입동이 하루 지난 오늘, 겨울이 성큼 다가왔음이 느껴지는 날씨다. 몸이 절로 움츠려질 만큼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오늘 안양시 새마을회관 주차장엔 이른 아침부터 빨간 고무장갑을 낀 사람들로 북적였다. 관내 이웃에게 전달할 김치 3,000포기를 담그기 위해 너나 할 것 없이 모인 회원들. 오늘 ‘따뜻한 겨울나기, 사랑의 김장 나눔’ 활동을 위해 안양시새마을지도자, 다문화가족, 한림대느린소봉사단 등 300여 명의 봉사자가 손을 보탰다. 그리고 안양시새마을회의 대표 고부 사이인 이정자 안양시새마을회 자문위원과 그녀의 며느리인 방송인 크리스티나 콘팔로니에리 씨도 함께했다.
산처럼 수북하게 쌓인 절인 배추는 깨끗하게 헹군 뒤 길게 늘어선 테이블로 차례차례 옮겨진다. 회원들은 기다렸다는 듯 익숙한 손놀림으로 배춧잎 사이사이에 먹음직스럽게 버무린 빨간 김칫소를 켜켜이 바른다. 바구니에 김치가 가득 담기면 이번엔 건장한 청년들이 김치를 포장대로 나른다. 정성스레 담은 김치를 새지 않게 잘 동여매고, 박스에 차곡차곡 담으니 포장된 김치상자가 이내 담벼락처럼 높게 쌓인다.
새마을회원들의 김장 활동은 이맘때쯤이면 자주 볼 수 있는 풍경인데, 오늘 안양시새마을회 김장 활동은 조금 특별해 보인다. 물론 방송인 크리스티나 씨가 참여한 것도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지만, 그 못지않게 적극적으로 김장 활동에 참여하는 다문화 결혼 이주 여성들이 눈에 띈다. 베트남, 일본, 몽골 등 아시아권을 비롯해 러시아 등 유럽권 회원까지 다양하다.
“글로벌 사회잖아요. 외국인도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고 또 한국인들도 외국 문화에 관심이 많아졌어요. 이렇게 활동이 있을 때마다 모이다 보면 자연스럽게 서로 다른 나라의 문화, 음식을 배우며 친해져요. 저는 그게 너무 좋아요.”
안양시새마을회 홍보대사를 맡고 있는 크리스티나 씨는 각자 다른 문화에서 살다 왔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에게 배울 수 있는 것이 많다고 말한다. 이러한 분위기 때문일까. 안양시새마을회는 다문화 가정의 참여도와 만족도가 굉장히 높다. 오늘도 참여하고자 하는 인원이 더 많았는데, 모두 수용할 수 없어 겨우 25명만 추렸다고 장광일 사무국장이 말을 보탠다.
크리스티나 씨는 남편 김현준 씨를 이탈리아에 있는 어학원에서 만났다. 그가 이탈리아에서 공부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려 하자, 크리스티나 씨는 그를 따라 한국에 왔다. 그리고 2007년 결혼했다. 결혼 후 시어머니와 한집에서 살게 된 크리스티나 씨는 자연스럽게 새마을운동을 알게 됐다.
그녀의 시어머니인 이정자 안양시새마을회 자문위원은 누구보 다 적극적인 새마을지도자다. 그녀는 안양에서 살기 전엔 서울에서 가사 선생님을 하며 동시에 적십자를 비롯한 여러 봉사활 동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남편의 이직으로 안양에 터를 옮기면서 새마을운동을 시작하게 됐다고. 39세부터 시작한 새마을운동을 78세인 지금까지 애정 가득 담아 이어오고 있다. 젊을 때의 체력이나 활동 횟수에는 비할 바가 못 되지만 그 마음이나 노하우는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만큼 무르익었다.
“안양으로 이사 오면서 남편이 열심히 봉사하라고 차 한 대 사주더라고요. 그 차를 몰고 여기저기 이동하면서 셀 수 없이 많은 봉사를 했어요.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안양시새마을회는 정말 알아줬어요. 며느리가 들어오면서 제가 크리스티나에게 말했어요. 엄마는 새마을 사람이다. 새마을운동은 우리 인생의 기본이다. 봉사하면서 마음을 채우고, 이웃을 섬기며, 모두가 잘 되는 것, 그게 새마을운동이다. 그러니 같이하지 않을래? 라고요.”
시어머니의 제안에 크리스티나 씨는 흔쾌히 “좋아요”라고 답했다고 한다. 한국에서 방송 출연하랴 학생들을 가르치랴 바쁜 그녀. 사실 오늘도 이탈리아 대사관의 초대가 있었는데, 김장 활동이 선약이었다며 기꺼이 새마을운동에 참여할 만큼 시어머니 못지않은 애정을 드러냈다.
“이탈리아에도 공동체 문화가 있어요. 하지만 조금 달라요. 이탈리아는 종교를 기반으로 봉사하는 경우가 많은데, 한국은 새마을운동만 보더라도 대가나 의도가 없잖아요. 조금 신기했어요. 한국 사람들은 모이는 것도, 돕는 것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새마을운동에 동참하다 보니 어느 순간 제가 사람들을 돕는 게 아니라 사람들한테 오히려 좋은 에너지를 받는 느낌이 들어 더 고맙더라고요.”
어느덧 한국에서의 결혼생활 17년 차 K-며느리 크리스티나 씨는 시어머니 덕분에 한국 생활에 빠르게 적응하고 새마을운동 덕분에 진짜 한국 문화와 정을 느끼고 있다고 말한다.
크리스티나 씨는 결혼 후 시어머니의 권유로 KBS <미녀들의 수다>에 출연하면서 세간의 관심과 인기를 얻었다. 그 덕분에 한국에서의 적응이 다른 이들보다 조금은 더 쉬었을지도 모른다. 그녀가 다수의 관심과 애정 덕분에 한국 사회에 무탈하게 정착했듯, 이젠 그녀가 다른 이들을 위한 지원과 응원을 아끼지 않는다.
“안양시새마을회에서 하는 ‘우리동네 행복밥상’ 프로그램이 있어요. 다문화 결혼 이주 여성과 어르신, 부녀회 등이 함께 하는 활동이죠. 이번엔 베트남에서 온 응우옌티끼에우응우옛투이 씨가 셰프가 되어 월남쌈 만드는 법부터 예쁘게 싸는 법까지 현지인만이 알 수 있는 진짜 팁도 알려줬어요. ‘행복밥상’에서는 누구나 그 나라를 대표하는 사람이 될 수 있고, 셰프가 될 수 있죠.
이런 활동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자신감이 생기고 자존감이 올라갈 수 있어요. 저는 ‘행복밥상’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새마을운동의 다양한 활동을 통해 ‘아 한국에 오길 잘했다’라고 느꼈으면 좋겠어요. 제가 그렇듯 다문화 가족들도 여기가 두 번째 고향처럼 느끼고, 한국에서의 삶이 외롭지 않게 느꼈으면 좋겠어요.”
같은 다문화 여성으로서 다른 이들의 삶을 응원하는 그녀의 고운 마음과 그 마음이 다른 이들에게 닿는 순간이다. 크리스티나 씨는 과거 자신이 출연했던 <미녀들의 수다> 프로그램처럼 앞으로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작은 토크쇼도 구상 중이라고 한다.
“제가 사회를 보고 새마을운동에 참여하는 다문화 가족분들을 패널로 모시는 거죠. 각 나라의 문화나 풍습 등 한국과 무엇이 다른지 정말 실감나게 들어볼 수 있을 것 같지 않나요? 너무 즐거운 시간이 될 것 같아요.”
‘봉사할 때는 타의 모범이 되게 하라’는 이정자 자문위원의 말처럼 그녀의 며느리 크리스티나 씨 역시 기웃거리는 봉사가 아니라 매사에 최선을 다한다. 3시간가량 지났을까. 어느덧 배추 3,000포기 김장이 끝이 보인다. 모든 봉사가 그렇겠지만 특히 김장은 ‘우리’, ‘함께’의 힘을 더 강하게 느낄 수 있어서 좋다는 크리스티나 씨. 마음을 담은 김치가 하나둘 이웃의 품으로 출발한다. 겉절이를 특히 좋아한다는 그녀. 김장이 끝난 후 모두가 함께 오늘의 수고를 격려하며 함께 준비한 식사로 허기진 배를 달랜다.
오늘 이정자 자문위원과 크리스티나 씨, 그리고 회원 모두는 이웃에게 김치를 선물했지만, 우리 모두는 추운 겨울을 잘 보낼 수 있는 온정을 선물 받았다. 앞으로도 선한 영향력을 꾸준히 이어갈 그들의 새마을운동을 응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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