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종

새마을운동을 통해 희망을 나누는
우리들의 이야기

2023 05·06 제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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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간절함이 담긴 글자,
희망의 가교가 되다

‘칠곡할매글꼴’ 권안자, 김영분, 이원순,
이종희, 추유을 할머니

태어나는 순간부터 삶은 늘 배움의 연속이다.
배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칠곡할매글꼴의 주인공 중 한 분인 이종희 할머니는 “배움은 좋은 일”이라고 말한다.
배우고 싶어도 배울 수 없던 환경에 살던 그들이, 마침내 평생의 간절함을 담아 한글을 배웠다.
그간 꾹꾹 눌러쓴 글씨는 ‘칠곡할매글꼴’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태어났다.
삶의 희로애락을 담은 글씨가 세상을 환하게 하는 희망의 가교가 되고 있다.

글. 왕보영   사진. 칠곡군청

제때 못 배운 평생의 한을 풀다

지난 1월 25일 경북도청에서 특별한 수업이 진행됐다. 평소 경북도청 직원들이 독서를 하는 미래창고에 과거 시간 여행을 온 듯한 1970년대 교실 풍경이 펼쳐진 것. 이 특별한 수업의 주인공은 ‘칠곡할매글꼴’을 만든 할머니들이다. 복고 느낌이 물씬 풍기는 교복을 입고 나무로 된 책걸상에 앉자 생전 처음 보는 교실 풍경이 신기한지 재잘재잘 수다 떠는 모습이 영락없는 소녀들이다.
오늘 수업의 선생님을 맡은 이는 수학 교사 출신이자 경북도민행복대학 총장인 이철우 경북도지사다. 선생님이 교실 문을 열고 들어오자 김영분 할머니가 떨리는 목소리로 힘차게 “차렷, 선생님께 경례!”를 외쳤다.
김영분 할머니는 곱게 입은 교복과 난생처음 해보는 반장 역할이 낯설면서도 좋은지 교복을 몇 번이고 매만지며 “갑자기 내 보고 반장하라캐서 을매나 놀랬는지. 틀릴까 봐 집에서 몇 번이나 연습했는지 몰라요”라고 말했다.
오늘 수업은 경상북도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며, 그간 배운 한글실력을 체크하는 받아쓰기도 진행됐다. 참석한 할머니들의 나이는 모두 달라도, 교복과 교실, 수업 등 모든 게 생에 첫 경험인 것은 같았다. 그리고 수업 내내 얼굴에 비치는 환한 미소와 수업에 대한 열정까지도.
수업이 끝날 즈음 할머니들은 경북도민행복대학 이름으로 명예졸업장을 받았다. 졸업식 하면 빼놓을 수 없는 학사모도 쓰고 기념사진도 남겼다. ‘위 학생은 행복대학 수업에서 위와 같이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기에 이 상장을 수여합니다’라고 적힌 상장을 받은 할머니들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춤을 추기도 했다. 지난 세월 일제강점기로, 한국전쟁으로, 여의찮은 생활고로…. 저마다의 사연과 사정은 달랐지만, 제때 배우지 못한 평생의 한이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는 순간이었다.
“글이라 카는 게 그렇게 무정하고 어떨 때는 속이 터져서 내가…. 이름도 쓸 줄 모르던 나한테 한글을 알려줘서 참말로 고맙지요. 이렇게 졸업장도 주고 상장도 받고 예쁜 교복도 입고, 오늘 기분이 너무 좋아예”라고 말하며 이원순 할머니가 그간의 설움을 기쁨의 웃음으로 털어냈다. 옆에서 선생님의 대답에 가장 씩씩하게 대답했던 반장 김영분 할머니는 “이런 날이 어딨노”라며 졸업장을 품에 안고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지난 1월, 성인문해교육을 받은 ‘칠곡할매글꼴’ 주인공인 할머니들이 마지막 수업을 받고 명예졸업장을 받았다.

배움을 넘어 삶의 의미를 찾다

“동생들이 넷이나 되이께, 동생들을 공부시키야 된다미 엄마 아부지가 그랬습니더. 너는 아직 안 해도 되니까 동생들을 시켜야 한다고…”라고 말한 김영분 할머니도, “아들 공부시키고 또 들에 밭매러 댕기고 그런 거 하니라 공부가 뭐라요”라고 말한 이원순 할머니도, “열 살이 되던 해에 부모를 잃었어요. 남의 집 돌아다니며 식모살이하느라 공부는 무신 살기 바빠 내 이름 쓸 줄도 몰랐습니더”라고 말한 권안자 할머니 역시 배움을 잠깐 미룬다 생각했지만, 녹록지 않은 삶을 사느라 그 시간이 수십 년이나 흘러 버렸다.
이들처럼 한글을 읽고 쓸 줄 모르는 이들을 위해 칠곡군에서는 평생학습 프로그램 중 하나로 성인문해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한글을 깨친다는 것은 교육을 넘어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한글을 읽고 쓸 줄 알게 되면서 평범한 일상을 마음껏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주변의 권유로 권안자, 김영분, 이원순, 이종희, 추유을 할머니는 지난 2020년부터 성인문해교실에서 한글을 배우기 시작했다.
“재미있더라고요. 공부 시작하기 전에 노래도 많이 하고, 나더러 글씨를 잘 쓴다고 카데요. 그래서 내가 선생님요~ 나는 제일 못 쓰는 사람한테 해당되는 게 맞지 싶은데 말했지요.” 추유을 할머니가 지난 수업 시간을 떠올리며 이야기했다.
“선생님이 우리 즐겁게 공부시킨다고 머리에 삭삭 들어가게 쉽게 해줬어요. 아이고, 뭐 잘하도 못하고 제일 꼰드바리에 드갑니더. 꼰드바리에 드가도 마음은 행복했제”라며 이종희 할머니가 거들었다.
실력이 늘어갈 때마다 세상이 선명해졌다. “농협 같은데 가면 돈 찾을 때, 자기 이름 쓰라 카잖아요 옛날에는 쓸라카믄 팔이 떨리 싸서 못 쓰고 그랬는데, 요즘은 떨고 그런 건 없어요.” ‘추유을’ 이름 석 자를 쓴다는 일이 할머니에겐 큰 기쁨이고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일이 됐다.
일흔이 넘어서야 한글을 배우기 시작한 할머니들의 삐뚤빼뚤한 글씨 한 자 한 자엔 마치 희로애락을 담은 우리네 삶이 닮긴 듯하다. 이런 할머니들의 글씨를 보고 가족들은 글씨가 보이는 것이 아니라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고 말한다.

성인문해교육을 받고 있는 할머니들

우당탕 칠곡 할매들의 도전, 새마을운동을 닮다

할머니들이 배움을 통해 어제보다 더 나은 내일을 누리게 된 긍정의 결실을 더 많은 이들과 경계 없이 나눌 방법은 없을까라는 생각에서 출발한 고민은 폰트 제작에 이르렀다. 폰트화 사업에 참여할 어르신들은 10년 이상 성인문해교육을 받은 분 중 성인문해강사들의 추천과 공모 등을 통해 이뤄졌다. 한글 공부가 더 절절했던 분, 수업에 더 열의를 가졌던 분, 한글 공부와 남다른 인연이 있었던 분, 서체가 남달랐던 분 등 심사숙고 끝에 권안자, 김영분, 이원순, 이종희, 추유을 할머니 다섯 분을 선정한 것이다.
“폰트가 뭔지 몰라~” “비누 뭐 이런 거 만드는 기라예?” 가나다라조차 모르던 할머니들이 폰트라는 이름도, 개념도 알 리가 없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19가 세상을 덮쳤다. 하는 수 없이 성인문해 강사들이 할머니 한분 한분을 집으로 찾아가 글씨 연습을 도왔다. 처음엔 A4용지 100장과 펜 3자루씩 드렸다.
일주일 만에 다시 찾아가면 100장을 다 쓰고도 모자라 다른 종이에 연습한 것이 수두룩하게 쌓여 있었다. 4개월간 각자 연습한 종이가 2,000장이 넘었고 펜 7개의 잉크가 다 닳았다. 꾹꾹 눌러 쓴 할머니들의 글씨에 칠곡군청과 비영리단체인 ‘아울러사회적협동조합’, 디자인 글꼴 제작업체 ‘다온폰트’가 힘을 합쳤다.
“저녁에 잠이 안 오고 하믄 내 혼자 11시까지도 할 때 있고, 12시 까지도 할 때 있고. 책 자꾸 들다 보고 이라믄 두 자 배울 거 한 자 더 늘고….” 김영분 할머니의 연습은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한글은 보고 쓰라니까 그대로 쓰겠는데, 영어도 쓰라카데. 듣도 보도 몬한 글을 쓸라카니 꼬부랑 걸 그걸 몬쓰겠습디더.”, “아이고. 영어는 못해요. 꼬불꼬불하게 하는 거 그거 그렇게 하기 힘들어요”, “영어 하니 재미는 있는데 이래 돌아기미 쓸라카이 못 쓰겟드라카이. 그게 힘들었어요.” 한글 폰트에 이어 영어 폰트까지 만들려다 보니, 꼬불꼬불 그림같이 생긴 알파벳이 할머니들을 꽤나 힘들게 했다고.
그렇게 지난 세월 배움에 대한 간절함, 포기하지 않았던 긴 연습시간, 해낼 수 있다는 용기와 함께라는 믿음이 더해져 마침내 ‘칠곡 할매 글꼴’이 완성됐다. 가족들의 반응을 묻자, 추유을 할머니가 “우리 딸도 손녀도 대단하다 카믄스 연락했어”라고 말했다. “깜짝 놀라지. 엄마도 이렇게 공부해가 편지를 쓴다믄서. 딸이 울었어”라며 김영분 할머니도 말을 더했다.
칠곡할매글꼴은 한컴오피스, MS오피스에도 탑재됐으며 누구나 편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무료로 배포했다. 국립한글박물관은 이 글꼴을 문화유산으로 등재했고, 특히 올해 초 대통령 연하장 글꼴로 선정되어 다시 한 번 이슈가 되기도 했다. 상인들은 이 정겨운 글꼴을 이용해 홍보자료를 만들기도 하고, 누군가 주문한 음식에 감사하다는 편지를 작성하기도 한다. 생전에 상상도 못해봤을 법한 일들이 눈앞에서 계속 펼쳐진다.
“위에 어른들은 세상을 떠서이 이 세월도 못타고났지마는 우리는요 세월을 타고나 배울수 있었어요”라고 말하는 이원순 할머니. 많은 사람들이 그간 못 배운 세월과 서러움을 위로하지만, 할머니들은 하루라도 더 젊었을 때 배울 수 있음에 좋다고 말한다.
이종희 할머니는 “배우는 건 좋은 일이라카믄. 모르는 것은 서로서로 가르쳐 주면 되고. 젊을 때 즐겁게 살아야 한다”라고 전했다.
마을곳곳 마다 ‘꽃피는 금남리’, ‘농가 먹어야지’, 그만하마 잘 햇다‘ 등 삐뚤빼뚤한 정겨운 글씨가 새겨졌다. 할머니들이 배움으로 피워낸 행복이 오늘도 곳곳으로 퍼져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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