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
새마을 ①
글. 박종희
사진. 전경민

“다음 달에도 또 오세요”,
5년 동안 이어온 약속
전남 목포시부녀회
매달 넷째 주 화요일 아침, 목포시장애인종합복지관 한편에는 일찍부터 분주한 손길들이 모인다. 커트보를 가지런히 펴고, 가위와 빗을 꺼내 놓고, 이용자들을 맞이할 자리를 차근차근 갖춰나가는 사람들. 복지관 문이 열리면 그 자리를 기다려온 얼굴들이 하나둘 들어서고, 사각사각 가위 소리와 함께 소소한 안부가 오간다. 돌아서는 길에 봉사자의 손에 사탕을 쥐여 주며 건네는 한마디. “다음 달에도 꼭 와요.” 이 작은 약속이 5년째 이어지고 있다. 하당동부녀회의 ‘사랑의 가위손’은 목포시부녀회가 골목골목에서 이어온 약속의 한 장면이다.
목포의 안부를 묻고 살림을 챙기는 사람들
목포시부녀회는 23개 동, 630개 통, 802명의 지도자가 빠짐없이 움직이는 현장 중심의 조직이다. 이들의 하루는 이른 아침부터 시작된다. 어르신과 복지시설 배식 봉사, 취약계층 가정 반찬 나눔이 특별한 행사가 아닌 평범한 일상이다. 여름이면 열무김치와 삼계탕을, 겨울이면 정성껏 담근 김장김치를 이웃의 식탁에 올린다. 안심이부녀순찰대 활동으로 골목의 밤을 지키는 일에도 앞장서고, 목포의 크고 작은 행사가
있을 때면 가장 먼저 현장에 나가 보이지 않는 자리를 채운다. 지도자 한 사람 한 사람이 단순한 봉사자가 아니라, 자기 동네를 살피고 돌보기 위해 움직이는 사람들이다.
나눔의 방식도 남다르다. 2025년 3R 자원재활용품 헌 옷 모으기 경진대회에서 54톤에 달하는 헌 옷을 수거했고, 이 수익금은 다시 이웃을 돕는 재원으로 쓰인다. 버려질 뻔한 옷들이 따뜻한 밥상과 김장김치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받는 나눔이 아닌, 지역 안에서 스스로 순환하는 나눔을 만들어온 것이 목포시부녀회의 힘이다.
그 활동이 하나의 봉사로 꽃핀 곳이 바로 하당동이다.
하당동부녀회 김수정 회장은 거동이 불편해 미용실을 찾기 어려운 장애인들에게 이·미용 봉사가 꼭 필요하겠다는 생각으로 직접 관내 미용실을 한 곳씩 찾아다니며 봉사의 취지를 설명하고 참여를 부탁했다. 누군가는 시작해야겠다는 마음 하나로 나선 길이었다.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뜻을 이해하는 원장들이 하나둘 늘어났고, 각자 바쁜 일정을 쪼개어 기꺼이
함께하겠다는 손길이 모이면서 지금의 ‘사랑의 가위손’이 자리를 잡았다.
가위를 든 손, 커트보를 펴는 손
봉사는 매월 넷째 주 화요일 오전 9시, 한 시간 동안 진행된다. 새마을회원으로 영입된 현직 미용실 원장들이 커트와 시술을 맡고, 부녀회원들이 안내와 현장 운영을 지원한다. 매회 30~50명의 복지관 이용자가 이 자리를 찾는다. 봉사팀이 들어서면 복지관 안은 금세 활기를 띤다. 이용자들이 자리에 앉으면 부녀회원들이 능숙하게 커트보를 두르고, 원장들은 사각 사각 가위를 움직이며 손질을
시작한다. “요즘 어떻게 지내셨어요”라는 짧은 인사가 오가는 사이, 거울 속 달라진 자기 모습을 들여다보며 수줍게 웃는 얼굴도 보인다. 단정하게 정리된 머리를 손으로 한 번 쓸어 넘기고는 “한결 가볍다”라며 밝은 얼굴로 자리를 일어서는 모습이 이어진다. 봉사하는 사람도, 봉사를 받는 사람도 모두 환한 얼굴이다. 봉사가 끝나도 이용자들은 쉽게 자리를 뜨지 않는다. 준비해 온 간식을 나눠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이어가다 보면, 어느새 다음 달 약속을 나누고 헤어지는 것이 이 자리의 자연스러운 마무리가 됐다.
김 회장은 복지관 이용자들로부터 봉사 날을 기다렸다는 말을 들을 때면 책임감이 생긴다고 한다. “머리를 잘라드리는 짧은 시간이지만 그 안에서 서로 이름을 부르고 안부를 묻다 보면 어느새 저도 모르게 이분들이 기다려집니다. 집에서 시를 써서 가져오신 분이 계셨는데, 그 손 글씨를 받아 드는 순간 오히려 제가 더 큰 마음을 받은 것 같았어요.”
참여 원장들의 헌신도 조용하지만 깊다. 이른 아침 봉사를 마치자마자 곧바로 자신의 미용실로 달려가야 하는 빠듯한 일정 속에서도 5년간 단 한 번도 빠지지 않았다. 봉사 운영 역시 별도의 보조금 없이 부녀회 자체 회비와 기금, 원장들이 직접 챙겨오는 미용 물품으로 꾸려진다. 넉넉하지 않아도 서로 보태고 나누다 보니, 어느새 5년이 됐다. 목포시부녀회 전선미 회장도 매번 현장을 직접 찾아 회원들을 격려하고 함께한다. 하당동부녀회의 작은 봉사 뒤에는 목포시부녀회 전체의 마음이 함께하고 있다.
다음 달에도 꼭 와요
이 봉사를 5년간 이어오게 한 힘은 무엇보다 이용자들의 마음이었다. 고마운 마음을 전하려 집에서 미리 시를 써서 고이 접어 온 이용자가 수줍게 손 글씨를 건네던 순간,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이는 말이 필요 없었다. 머리를 말끔히 다듬고 환하게 웃는 얼굴, 돌아서는 길에 손에 쥐여 주는 사탕 한 알. 그 사소한 장면들이 쌓여 5년이 됐다.
머리를 자르는 짧은 시간이지만, 이 자리는 단순한 이·미용 봉사를 넘어 서로 이름을 기억하고 안부를 나누는 관계의 자리가 됐다. 고령화와 1인 가구가 늘어가는 현실 속에서 이런 손길이 닿는 자리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한 달 중 가장 기다려지는 날이 된다.
목포시부녀회가 23개 동에서 이어가는 활동들이 그렇다. 세상이 변하고 사람들의 사는 모습도 달라지지만, 사람이 사람을 챙기는 마음만큼은 변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믿음이다. 거창한 목표를 세우기보다 골목 어귀에서, 복지관 한편에서, 누군가의 곁에 조용히 있어 주는 일. 그 자리에는 늘 웃음이 있고, 사람의 온기가 있다.
“우리 부녀회 지도자들은 단순한 봉사자가 아니에요. 각자의 동네를 살피고 돌보는 사람들입니다. 23개 동 어디서든 이웃이 어렵다고 하면 그 자리에 있는 게 우리 부녀회거든요. 세상이 변해도 사람이 사람을 챙기는 마음만큼은 변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행동으로 보여주는 봉사로 목포를 조금 더 살맛 나는 곳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전선미 회장을 비롯한 802명의 지도자는 “새마을부녀회가 있어 참 든든하다”라는 말 한마디를 동력 삼아 앞으로도 쉼 없이 뛰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오늘도 목포시부녀회는 골목 어딘가에서 누군가의 안부를 묻고, 누군가의 손을 잡고 있다.
전남 목포시부녀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