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
새마을 ②

글. 장희주
사진. 손호남

음성으로 듣는 새벽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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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을정신으로 잊힌 과거의 길을 잇다

2025 좋은 이웃 만들기 우수마을 공동체 경진대회 ‘최우수’
경남 밀양시 숲이 있는 숲마 어울림 공동체


쓰레기와 잡목으로 한동안 사람들의 기억에서 멀어졌던 옛길이 밀양시새마을회와 동명마을 주민들의 손을 거쳐 다시 이어졌다. 처음에는 쉽지 않아 보였던 이 선택은 길을 되살리는 데서 그치지 않고, 주민들의 마음과 마을을 바라보는 시선까지 조금씩 바꿔 놓았다. 숲길을 따라 이어진 동명마을의 변화는 일상 속 실천이 ‘공동체’로 확장되며, 지속 가능한 마을로 나아가는 작은 시작이 되고 있다.






잊혀진 길에서 되찾은 동명마을의 가능성

밀양시새마을회는 오랜 시간 동명마을 주민들과 생활 현장을 함께하며 일상의 자리에서 묵묵히 마을을 가꾸고 보살펴 왔다. 국기게양운동처럼 누구나 일상에서 쉽게 참여할 수 있는 활동부터 아동과 여성 지킴이 활동과 반찬 나눔, 사랑의 집 고쳐주기 사업까지. 이웃의 삶에 가장 가까운 곳에서 필요한 일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이러한 활동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재활용품 수집 경진대회와 환경 실천 활동을 통해 생활 속 환경 보호를 실천하고, 대통령기 국민독서경진대회와 청소년 독서퀴즈 경진대회, 피서지문고 운영 등 세대별 맞춤 프로그램으로 지역 문화의 저변을 넓혀왔다.
이처럼 생활 가까이에서 이어진 실천들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최근에는 주민 스스로 마을의 변화를 만들어 가는 공동체 사업으로까지 자연스럽게 확장됐다. 동명마을의 ‘숲이 있는 숲마 어울림 공동체’는 이러한 흐름 속에서 탄생한 대표적인 사례로 주민 주도의 참여와 연대가 마을의 새로운 가능성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김상철 동명마을 공동체 대표는 마을이 지닌 ‘잠재력’을 다시 바라보는 과정 속에서 이 공동체가 자연스럽게 시작됐다고 설명한다.
“동명마을은 충분히 ‘지속 가능한 마을 모델’이 될 수 있다고 봤습니다. 동명마을은 재약산 자락의 작은 산촌 마을로, 오랫동안 이 지역의 기억과 삶을 기록해 온 김춘복 작가가 함께해 온 곳이기도 합니다. 그의 기록 속에는 마을의 시간과 사람들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남아 있죠. 그 중심에는 ‘얼음골’이 있죠. 얼음골은 1970년 대한민국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곳으로, 겨울뿐 아니라 한여름에도 바위틈 사이로 얼음이 생성되는 독특한 자연환경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 얼음골로 들어가는 길의 시작점이 바로 동명마을이었죠. 하지만 도로가 새로 나면서 예전 얼음골로 향하던 옛길은 중간에서 끊기다시피 했습니다. 한때는 나물을 뜯고 숯을 굽고, 샘터에서 쉬어 가던 생활의 길이었지만 어느새 ‘잊힌 길’이 되어버린 겁니다.”
동명마을 주민들의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이 길을 그대로 두기에는 아쉬움이 컸다. 주민들은 마음을 모아 예전처럼 사람들이 오가던 등산로를 다시 정비해 보자고 뜻을 모았다. 그렇게 하나로 모인 마음이 공동체의 출발선이 됐다. 마침 그 무렵 행정안전부와 새마을운동중앙회가 후원하는 ‘2025년 마을공동체 사업·좋은 이웃 만들기’ 공모가 진행됐고, 동명마을은 사업 대상지로 선정됐다.
이후부터는 말 그대로 ‘사람의 손’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꽃모종을 심고 화단을 만들며, 물을 주고 돌보는 일상이 이어졌다. 사과 농사를 주업으로 하는 동명마을은 1년 내내 농번기가 계속되지만, 전지와 적과, 방제 작업 사이사이에도 주민들은 시간을 쪼개 현장으로 나왔다. 그렇게 마을의 손길이 하나둘 쌓이면서 숲마을의 풍경 역시 서서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재약산 등산로를 정비하는 모습





마을의 ‘기억’과 ‘희망’이 함께 되살아나던 과정

처음부터 모든 주민이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은 아니었다. 회의에 대한 피로감이나 사업에 대한 거리감도 분명히 존재했고, 참여 인원 역시 일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과정을 지켜보며 몇몇 주민이 먼저 움직이기 시작했고, 참여는 서서히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후 주민들은 환경 정비와 꽃길 조성, 등산로 정비 등 각자가 할 수 있는 역할을 맡아 자발적으로 현장에 나서기 시작했다.
작업은 생각보다 훨씬 고됐다. 무거운 자재를 비롯해 표지판과 목재를 들고 오르내리는 일은 한두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게다가 톱날과 못처럼 챙겨야 할 장비도 많았고, 한 번에 모두 들고 올라갈 수 없어 중간에 내려왔다가 다시 올라가기를 여러 차례 반복해야 했다.
“이어지는 동안 보이지 않는 원망의 말들도 적지 않았죠. ‘이 더운 여름에 왜 이런 쓸데없는 일을 하느냐’, ‘결과가 보장된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고생하느냐’라는 이야기도 들렸고요. 하지만 작업을 멈출 수는 없었습니다.”
길 곳곳에는 나무와 꽃도 심었다. 단순히 길을 정비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사람들이 머물고 바라볼 수 있는 풍경을 함께 만들어 가고자 한 선택이었다. 그렇게 조금씩 손을 보태며 이 길은 다시 ‘사람이 다니는 길’이 되었고, 마을의 기억과 희망도 함께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결과가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흘린 땀이었지만, 결국 그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시간이 증명했다. ‘2025 좋은 이웃 만들기 우수마을 공동체 경진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으며 전국 단위 성과로 이어지자, 땀의 결과가 눈앞에 보이기 시작했고 주민들 역시 그 성취를 함께 기뻐하게 됐다.

좋은 이웃 만들기 우수마을 공동체 경진대회 ‘최우수상’ 수상을 기뻐하는 마을공동체





다시, 공동체의 힘으로 내일을 향해

마을의 기억과 희망이 함께 되살아난 동명마을에서 가장 큰 변화는 무엇보다 주민들의 ‘인식’이었다. 누군가 해주길 기다리기보다 우리 손으로도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경험이 쌓이면서 주민들 사이에는 자신감과 기대감이 생겨났다. 김상철 회장은 이러한 변화가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다. 이번 사업이 하나의 마중물이 되어 재약산 등산로가 더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고, 주민들이 주체가 되어 마을의 변화를 이어갈 수 있는 기반으로 자리 잡기를 기대하고 있다.
“앞으로도 이 사업은 계속 이어져야 합니다. 봄이 오기 전에는 제초 작업도 해야 하고, 안내판 보수나 등산로 정비도 주기적으로 필요하죠. 사람이 계속 다녀야 길이 살아 있습니다. 발길이 끊기면 길도 다시 사라집니다. 그래서 우리의 목표는 이 길이 자연스럽게 활성화될 때까지 꾸준히 관리해 나가는 겁니다.”
일회성 정비로 끝나지 않도록 앞으로도 주민이 중심이 되는 관리 방식은 계속 이어질 계획이다. 정기적인 점검과 소규모 정비를 통해 등산로와 마을 길을 ‘살아 있는 공간’으로 유지하고, 마을 탐방이나 소규모 프로그램과 연계해 활용도 역시 높여갈 생각이다.
“이 길은 주민들이 오랜 시간 마음을 모아 가꿔 온 생활의 공간입니다. 이 길을 찾는 분들이 잠시 걷고 지나가는 길일지라도 그 안에 담긴 주민들의 노력과 염원을 한 번쯤 떠올려 주신다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이 길은 앞으로도 더 많은 이야기와 변화를 품은 채 오래도록 살아있는 공간이 될 겁니다.”
숲마 어울림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주민들은 비로소 ‘마을로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를 새롭게 상상하게 됐다. 길을 정비하는 작은 실천에서 출발했지만, 이제는 공동체를 통해 더 넓은 가능성과 미래를 그려보게 된 것이다.
주민들의 건강을 위해 마을 공터를 활용한 운동 공간을 조성하고, 공동 수익 창출을 위한 작업장도 마련하고 싶다는 바람을 품고 있다. 생산한 농산물을 직접 판매할 수 있는 공간이나 가공과 체험이 어우러진 6차 산업형 마을 모델 역시 그려보고 있다. 동명마을의 주민들이 모여 다시 이어진 이 길은 동명마을의 어제와 오늘을 잇고 그렇게 내일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