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마을 人터뷰 ②
전통 장맛으로 전하는 온기
충남 당진시새마을회
공장에서 대량 생산한 장류를 사 먹는 일이 흔해진 요즘, 전통 방식으로 장을 담가 어려운 이웃에게 나눔을 실천하는 단체가 있다. 바로, 회원 600여 명이 활동 중인 충남 당진시새마을회다. 장독대가 있고, 메주 틀까지 제작해 사용하며 씨간장과 씨된장까지 갖춘 당진시새마을회는 2015년부터 소외계층을 위한 전통 장 나눔에 진심이다.
글. 임영현 사진. 홍승진
직접 만들어 소외계층에게 전달하는 전통 장
1997년 시작해 30년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마을사랑운동’만큼이나 빼놓을 수 없는 당진시새마을회의 활동이 하나 있다. 메주를 쒀 간장과 된장을 완성하고, 고추장도 만들어 관내 형편이 어려운 이웃에게 선물하는 전통 장 담그기 사업이다.
“우리 당진시새마을회 가족은 2015년부터 전통 장 담그기 사업을 펼치고 있습니다. 소외계층을 위한 김장 나눔 사업을 오랫동안 주도적으로 진행해 왔는데, 최근 들어 다른 단체들도 같은 사업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우리 음식의 필수 기본양념인 장에 주목하여, 매년 간장과 된장, 고추장을 담가 전달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메주를 항아리에 넣고 소금물을 부어 장을 담그는 날입니다.”
지난 2월 26일, 5년째 당진시새마을회를 이끌고 있는 한민섭 회장으로부터 전통 장 담그기 사업에 대한 설명을 듣고, 1층 야외에 있는 장독대로 향했다. 장독대 주변에는 당진시 14개 읍면동 협의회장·부녀회장 등 30여 명의 회원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회원들은 장 담그기를 위해 전날 장독대를 정리하고, 항아리를 깨끗하게 세척, 소독하였으며, 소금물을 미리 타서 불순물을 정리하는 작업까지 완료한 상태.
항아리 안에 넣을 메주는 지난해 12월에 회원들이 직접 만든 메주다. 당진시새마을회는 지난해 11월에 지역 농가에서 메주콩 700kg을 구매한 후, 이를 세척하고 24시간 이상 불려 5시간 동안 콩을 삶았다.
“균일한 장맛을 내기 위해 메주 틀을 제작해 메주를 빚고 있어요. 이번에도 메주 500개를 만들었고요. 유익한 곰팡이가 메주에 자리 잡도록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는 발효 숙성 과정을 ‘메주 띄우기’라고 하는데, 메주를 잘 띄우는 작업이 가장 어렵습니다. 짚을 깔고 메주를 올린 후 건조하는 과정에서 온·습도를 세심히 맞춰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나쁜 곰팡이가 생기면 애써 만든 메주가 하루아침에 까맣게 썩어버리니 가시밭길이 따로 없어요. 사찰에서 장 만드는 방법을 배워오기도 했고요.” 김기택 당진시부녀회장의 설명이다.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하기 전, 항아리에 함께 들어가는 마른 대추·건고추를 천으로 닦는 회원들이 보였다. 당진시새마을회는 메주가 소금물에 뜨지 않고 잠길 수 있도록 솔가지를 넣고, 가늘게 가른 대나무살로 고정한다. 대나무가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대나무를 쪼개 건네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한 항아리에 넣는 메주는 25개. 회원들은 항아리에 메주를 조심조심, 차곡차곡 담고, 소금물을 부은 후 마른 대추 · 건고추, 숯을 띄우고, 솔가지와 대나무살까지 넣어 장 담그는 작업을 순조롭게 마무리했다.
“오늘은 메주를
항아리에 넣고
소금물을 부어
장을 담그는 날입니다”
1년 걸리는 수고로움을 단번에 잊게 만드는 이유
2024년 10월에 국가유산진흥원이 발간한 〈한국의 장 담그기 문화〉에 “한국의 장은 기다림의 미학으로 완성된다”라는 문장이 있다. 또한 “장은 365일 돌봄을 통해 완성된다”라고 써있다. 이처럼 당진시새마을회가 오는 11~12월경 1,000여 세대에 간장, 된장, 고추장을 전달하기까지 변질을 막기 위한 옻나무 조각 넣기(3월), 항아리에서 메주를 건져 간장과 된장을 분리해 발효시키는 ‘장 가르기(5월)’, 고추장 담그기(11월), 포장 과정이 남아있다. 한마디로 수고로움이 계속된다는 의미다. 그런데도 당진시새마을회가 직접 만든 장을 어려운 이웃들에게 전달하는 사업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고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통 장 담그기 사업에 참여하며 장 만드는 방법을 처음 배웠어요. 간장과 된장, 고추장을 전달받는 분들이 대부분 취약계층이나 홀몸 어르신들인데요, 우리가 직접 만들었다고 말씀드리면 대견하다고 해주신답니다. 정말 맛있다고, 고맙다고, 주변에서 돈 주고 살 수 있냐는 이야기까지 들었다며 연거푸 말씀해 주시니 힘들어도 해마다 참여하고 있어요.”
이상길 송악읍부녀회장의 말에서 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장을 전달받는 분들이 좋아하시기 때문이다.
“11년째 장 담그기 사업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장담순 당진2동협의회장의 말에는 정성을 쏟아 장을 만들고, 이웃에게 전달한다는 자부심이 담겨 있었다. 올해 장맛이 어떨 것 같냐는 질문에 장담순 회장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사랑을 가득 담아 만들고 있으니, 맛이 없을 리가 없어요!”
장맛으로 더 커지는 가족이라는 의미
앞서 언급했듯이 당진시새마을회의 대표 사업은 단연 ‘우리마을사랑운동’이다. 이 사업은 29년째 이어져 오는 당진시 마을공동체 활성화 활동이다. 마을공동체 활동을 기획해 신청하면, 참여 마을을 선정한 후 상·하반기 평가를 통해 우수마을을 시상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탄소중립 실천 사업을 중점적으로 전개해 온 당진시새마을회는 ‘우리마을사랑운동’ 사업 평가 항목에 탄소중립 항목을 추가해 자발적인 실천을 장려해 왔다.
지난해 10월, 당진시가 제주도, 충남 보령시, 서울 노원구와 함께 탄소중립 선도 도시로 선정된 만큼, 당진시새마을회 역시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의 50%를 줄이고, 2045년 탄소중립 달성이라는 시의 목표에 적극 동참할 계획이다. 이에 올해 ‘우리마을 사랑운동’ 사업 평가 시 탄소중립 실천 항목 배점을 대폭 상향 조정했다.
이와 함께 당진시새마을회는 새마을운동 제창 55주년인 올해 새마을지도자 명찰을 제작해 ‘살고 싶은 도시’ 당진시를 만들기 위해 앞장서는 새마을지도자들의 자긍심을 높일 계획이다.
이날, 당진시새마을회 회원들은 장 담그기 활동을 마친 후 읍면동별로 팀을 꾸려 신나는 윷놀이 대회도 벌였다. 도, 개, 걸, 윷, 모…. 결과가 나올 때마다 앞서 나가는 읍면동에선 환호가, 기회를 놓친 읍면동에선 탄식이 나왔다. 다시마 고명을 올린 잔치국수와 부침개까지 만들어 나눠 먹는 모습에서 한민섭 회장이 회원들을 ‘가족’이라고 칭하는 이유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의 장 담그기 문화〉 중 “장맛은 백가백미(百家百味)로, 집집마다 맛이 다르다”라는 문장에서 확인할 수 있듯, 장 담그기는 가족공동체가 공유하는 문화다. 당진시새마을회는 전통 장 담그기라는 귀한 명맥을 이어가며, 단순한 음식을 넘어 ‘함께’라는 따스한 마음을 전하고 있다. 이들의 장맛은, 단순한 음식을 넘어 우리 사회를 더욱 훈훈하게 만드는 특별한 선물이자, 이 과정 속에서 ‘함께 사는’ 더 큰 가족을 만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