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운 울림
대한민국 산림녹화기록물,
세계기록유산으로 향하는 당당한 발걸음
이경준 산림녹화 유네스코 등재추진위윈회 위원장
(서울대학교 산림과학부 명예교수)
우리나라는 세계가 인정한 산림녹화 성공 국가이다. 새마을운동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산림녹화의 과정을 담은
‘대한민국 산림녹화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심사를 받고 있다. 한국산림정책연구회는 2016년에
산림녹화 유네스코 기록유산 등재추진위원회를 발족하고 산림녹화기록물을 찾기 위해 전국을 누볐다.
추진위원장인 이경준 서울대학교 산림과학부 명예교수는 이미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새마을운동기록물처럼, 대한민국 산림녹화기록물 역시 등재에 성공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글. 편집실 사진. 홍승진
대한민국의 발전과 함께한 산림녹화
산에 나무가 없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경준 서울대학교 산림과학부 명예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비가 오지 않을 때 즉시 가뭄이 발생하거나, 비가 한꺼번에 너무 많이 내리면 흙이 쓸려 내려와 산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고 한다. 이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불과 50여 년 전, 전국은 그야말로 벌거숭이산이었고 가뭄, 산사태, 흉년이 되풀이되는 악순환을 겪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산림녹화 성공 국가로 평가받고 있다. 이는 우리의 지속적인 노력 덕분이다. 특히 1982년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보고서를 통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산림녹화에 성공한 국가로 서독, 영국, 뉴질랜드와 함께 대한민국을 꼽았다. 당시 개발도상국 중 우리나라가 유일했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산림녹화는 ‘20세기 개발도상국의 기적’이라 불린다.
우리나라는 정부와 국민이 협력해 산림녹화에 성공했다. 정부는 제1·2차 치산녹화 10개년 계획과 같은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훼손된 산림 복원에 집중했고, 전 국민이 산림녹화에 참여했다. 정부가 묘목과 비료를 무상으로 제공하면, 농민들은 노동력을 제공해 나무를 심었다.
지역공동체인 ‘산림계’ 또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산림계는 산림조합의 하부 조직으로, 1951년 제정된 ‘산림보호임시조치법’에 따라 마을마다 결성돼 규약과 벌칙을 만들고 산림자원을 관리했다. 농촌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산림계를 결성하고, 연료림을 조성해 농촌 연료를 자급자족하기도 했다. 이는 정부가 묘목과 비료를 무상으로 공급해 마을에 혜택(인센티브, 일거리 창출, 소득 증대)을 주고 참여를 독려하는 민관 협력 사업이었다.
“산림계는 마을 회의를 통해 정관과 규약을 논의하고 변경했습니다. 산과 들의 나무와 풀은 퇴비나 가축 사료로 사용되었는데, 무분별한 채취가 빈번했기 때문에 이를 통제(풀령)하는 역할 또한 산림계가 담당했죠. 산림계장이 함께 풀 베는 시기를 정하고, 그 날짜가 되면 산림계원이 모여 풀을 베고 분배했어요. 산림계가 지역공동체로서 큰 역할을 해 온 것이죠.”
우리나라는 최빈국에서 경제 발전과 민주화를 동시에 이루고, 산림녹화까지 성공적으로 완수해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이 모든 노력의 결과가 바로 현재의 대한민국이다.
산림녹화기록물 세계를 향하다
우리나라의 산림녹화 성공 사례는 세계사적으로 큰 의미를 가진다. 1960년대 우리나라는 한국전쟁으로 국토가 황폐화되고, 모든 산림이 완전히 파괴된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반세기도 안되는 짧은 기간에 산림을 성공적으로 복원한 것은 세계적으로도 전례가 없다. 경제 발전과 환경 파괴가 동시에 진행되는 현 시대에, 우리나라의 산림녹화는 개발도상국에 경제 발전과 환경보호의 모범 사례가 될 수 있다. 특히 기후변화가 가장 큰 국제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21세기에, 산림녹화는 가장 확실한 대응책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사례는 세계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공유자원 관리 이론’으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미국 오스트롬 교수의 저서 《공유의 비극을 넘어》에도 오랜 세월 동안 공유자원을 잘 관리해 온 세계 여러 나라의 사례가 실려 있지만, 우리나라의 산림녹화는 없다. 이유는 단순하다. 영문으로 번역된 기록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산림청과 산림청 등록 민간단체(예: 산림청 퇴직 공무원들의 친목 단체인 ‘임우연합’)는 산림녹화기록을 세계에 알리기로 뜻을 모았다. 2016년 3월 한국산림정책연구회(1971년 설립)를 통해 유네스코 기록유산 등재를 추진하기로 하고, 6월에는 40여 명이 모여 ‘산림녹화 유네스코 기록유산 등재추진위원회’를 발족했다.
“오랜 시간이 흘러 기록이 많이 소실되었을까 염려되어 선뜻 첫발을 떼기가 조심스러운 상황이었어요.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은 이유는 2013년 6월에 새마을운동기록물이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사례가 있었기 때문이죠. 산림녹화 역시 새마을운동처럼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대표하는 업적이기에, 새마을운동기록물을 본보기 삼아 산림녹화 기록물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자는 목소리가 커졌죠.”
하지만 한국산림정책연구회는 민간단체이기에 사실상 정부 지원이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추진위원들은 국가를 위해 봉사한다는 마음으로 재능을 기부하며 사명감을 가지고 임했다. 이미 등재된 다른 분야의 기록물을 검토하는 것부터 시작해, 산림박물관 기록물 열람, 시·군 산림조합과 마을별 산림계 탐방, 국가기록원 자료 열람, 수집 자료 전산화 등 모든 과정에서 보람을 느꼈다.
2017년 5월, 추진위원회는 3,600여 건의 자료를 1차로 문화재청에 제출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심사를 신청했다. 하지만 돌아온 답변은 ‘불가능하다’였다. 민간 기록물 부족이 이유였다. 부족한 것만 보완하면 됐다. 이후 산림조합과 산림계 관련 기록물을 집중적으로 발굴하여 2024년 2월, 총 9,619건의 자료를 다시 신청했다. 그 결과 세계기록유산 한국위원회 심의를 거쳐 산림녹화 기록물이 등재 신청 대상으로 선정됐다. 지난 7년간의 노력에 대한 값진 결실이었다. 현재 프랑스 파리의 유네스코 본부에 영문 번역본까지 제출을 마친 상태로, 오는 4월 중 최종 결과 발표를 기다리고 있다. 지금까지의 진행 상황으로 보아 긍정적인 결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새마을운동과 산림녹화 그리고 미래
이경준 교수는 우리나라의 산림녹화 성공 요인 중 하나로 새마을운동을 꼽았다.
“새마을운동의 기본 정신 중 ‘자조’와 ‘협동’은 1951년 설립된 산림계가 마을 공동으로 연료림을 조성하면서 자생적으로 생겨난 아름다운 전통이었어요. 새마을지도자들이 곧 산림계 회원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새마을회와 산림계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정부의 산림녹화사업에 앞장선 것이죠.”
이처럼 새마을운동은 직·간접적으로 산림녹화에 크게 기여했다.
새마을교육을 통해 나무를 심으면 가뭄, 홍수, 산사태를 막아 흉년을 예방할 수 있음을 알리고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했고, 새마을 양묘 사업과 밤나무의 공동 재배를 통해 소득을 창출해 새마을금고를 건실하게 만들었다. 또 아궁이 개량 사업은 임산 연료를 30% 절약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특히 새마을조직을 통해 대규모로 새마을 조림사업을 수행했다. ‘제1차 치산녹화 10개년 계획’에서 1973년부터 1978년까지 새마을사업 중 ‘마을환경개선사업’의 일환으로 전국 조림 면적의 43%(47만 ha)를 새마을 조림 사업으로 해결했다. 이처럼 새마을운동과 산림녹화 사업은 상호 보완적 관계를 맺으며 시너지 효과를 발휘한 것이다.
이경준 교수는 새마을운동기록물처럼 산림녹화기록물도 세계기록유산 등재 이후가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리나라의 산림녹화 사례가 지역공동체 결성을 통해 부족한 산림자원의 지속적인 경영과 관리를 가능하게 했듯 다른 개발도상국에도 적용 가능한 모델임을 알리고자 합니다. 지구온난화와 사막화로 전 세계의 산림이 쇠퇴하는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지구 살리기 운동의 모범국가로 앞장서기를 바랍니다.”
이경준 교수와 추진위원회는 산림녹화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통해 대한민국 역사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미래 세대를 위한 소중한 유산으로 남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했다. 대한민국의 산림녹화가 세계적인 모범사례로 다시 한번 도약하기를 바라며, 4월 발표될 최종 결과가 모두의 관심과 응원이 모여 좋은 소식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