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종

새마을운동을 통해 희망을 나누는
우리들의 이야기

2023 09·10 제1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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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을 사람들Ⅱ

“최고보다는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박황균 경기 연천군 미산면협의회 새마을지도자

박황균 지도자는 오늘도 눈코 뜰새 없이 바쁘다. 그가 없는 연천군은 상상할 수도 없을 지경이다.
몸이 바쁜 만큼 덩달아 휴대전화도 늘 바쁘게 울려댄다. 여기저기서 찾고, 언제든지 달려갈 준비가 되어있다.
그래서 박황균 지도자의 차엔 언제나 무엇이든 뚝딱 만들 수 있고, 해결할 수 있는 장비가 한가득이다.
그가 연천군의 박 반장이라 불리는 이유다.

글. 왕보영   사진. 전경민

무엇이든 뚝딱, 우리 동네 ‘박 반장’

“오늘 아침 8시에 면사무소에서 전화가 왔어요. 태풍에 나무가 부러졌는데 하필이면 길을 가로막아 차는 물론이고 주민들도 오갈 수가 없다고요. 그래서 부지런히 출동했죠. 태풍이 한반도를 관통한다기에 밤새 마음 졸였는데, 큰 피해 없이 이 정도이길 천만 다행이죠.”
박황균 지도자의 삶 대부분은 새마을운동으로 가득 차 있다. 사실상 미산면 나아가 연천군에서 하는 대부분의 활동이나 행사에 그가 포함되지 않는 것이 없을 정도이다. 코로나19로 세계가 떠들썩하던 지난 몇 년간은 매주 화요일이면 마을을 돌며 방역 활동을 했고 2016년부터 2022년 1월까진 분기별 국토대청결운동의 날을 정해 쾌적한 환경조성을 위한 청소 활동을 도맡았다. 또 홀몸 어르신들을 위한 집수리 활동, 농촌 폐비닐과 폐농약병 수거를 통한 장학금 기금조성, 제초 작업 등 무수한 활동들이 이를 증명한다.
놀라운 것은 이 모든 활동은 공식적으로 기록된 것일뿐, 비공식적인 활동까지 더하면 하나하나 나열할 수도 없을 정도다. 마을 어르신들의 주거 환경을 틈틈이 살피고 마을을 돌보는 것은 물론, 연천군새마을회관 내 방충망, 화장실, 보일러 등 그의 손이 안 닿은 곳이 없다.
“여기 사무실 창문에 방충망이 없어서 문을 못 열겠더라고요. 우리 박 반장님께 말씀드렸는데, 몇 가지 구입해 두라고 하더니 다음날 방충망을 뚝딱 만들어주셨어요. 그런데, 이렇게 액자처럼 예쁜 방충망 보셨어요? 전 생전 이런 건 처음 봐요.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시는지, 어쩜 이렇게 말만 하면 뚝딱 나오는지 신기할 정도라니까요. 저희 사무실뿐만 아니라 마을 주민을 위해 늘 수고하시는 분이죠. 우리 연천군에 박 지도자님 없으면 큰일 납니다.” 평소 자신이 하는 활동에 대해 내색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 박황균 지도자를 보다 못한 김형순 사무국장이 말을 보탰다.

새마을운동, 관심에서 삶이 되기까지

그가 새마을지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9년의 일이다. 박 지도자는 가구 인테리어 관련 일에 종사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교통사고를 당했고, 꼬박 20개월을 병원에서 지내야 했다. 꾸준한 재활치료로 많이 회복되긴 했지만, 여전히 다리가 불편했다. 당장 일을 시작할 수는 없겠고, 재활치료를 병행하면서 운동 삼아 마을 일을 도와볼까 하던 찰나 새마을지도자를 뽑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장님이 당시엔 이름만 올려도 되고, 크게 하는 일 없다며 제안하셨는데…. 일이 없진 않더라고요? 허허. 지금은 제 삶의 일부나 다름없지만요.”
새마을지도자가 되어 처음 활동을 시작했을 때는 주로 마을이나 면사무소 등과 일을 했다. 꾸준히 새마을지도자 활동을 이어가다 2016년에는 협의회장이 되었다.
“새마을지도자로 활동했을 때와는 느낌이 전혀 다르더라고요. 새마을지도자였을 땐 당장 보이는 봉사활동에 집중했다면 협의회장을 맡았을 땐 조직이 더 나은 방향으로 가기 위해 개선해야 할 점이나 비전 같은 것들이 보였죠. 예나 지금이나 가장 아쉬운건 새마을운동을 이어갈 새마을지도자의 부족이죠.”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새마을운동을 이어 나갈 젊은 새마을지도자들이 턱없이 부족한 것은 비단 연천군만의 고민은 아니다. 게다가 ‘우리’보다는 ‘나’가 중요한 사회가 되면서 새마을지도자가 있어도 공동체의식과 뜨거운 열정으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는 이들은 손에 꼽을 정도인 것도 사실이다.
“뽑을 사람이 없어요. 마을 이장님이 겨우겨우 부탁해야 할 정도죠. 사정이 이렇다 보니 했던 사람들이 이어가는 경우가 많아요. 나쁜 건 아니지만 새로운 사람이 유입되어야 분위기 전환도 되고, 파이팅 넘치는 것은 사실이니까요.”
사람이 없다 보니 박황균 지도자는 늘 분주하다. 여기저기서 찾아주니 감사한 마음이지만, 일이 한꺼번에 몰릴 때는 시간과 몸이 모자란 것이 한없이 아쉽다고 말하며 새마을운동에 대한 애정을 듬뿍 드러내는 그다.

곳곳에서 꾸준한 봉사와 새마을운동을 전개하여 연천군 박 반장이라 불리는 박황균 지도자

마음으로 하는 일

어쩌면 그의 봉사는 새마을지도자가 되기 이전부터 시작이었는지도 모른다. 파주에서 살던 박 지도자가 이곳 연천으로 터를 옮겨 왔을 당시, 이웃 어르신들의 고장 난 물건이나 불편해 보이는 살림살이 등을 사부작사부작 고쳐드렸는데, 그게 마을에 소문이 났다. 일을 하고 돌아오면 집 앞에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곤했다고. 일하랴 이웃들 살림살이 살피랴 그렇게 1년여를 정신없이 보냈는데, 주민들이 그해 여름엔 참외, 수박, 토마토를, 가을 엔 햅쌀을 이고 지고 그의 집으로 찾아왔다.
“어르신들이 돈이 어디 있겠어요, 쌈짓돈일 텐데…. 큰돈 들어가는 것이 아니면 제 돈으로 사서 고쳐드렸죠. 돈을 준다고 하시는 것도 한사코 마다했더니, 직접 농사지은 과일이며 곡식이며 들고 오시더라고요. 그마저도 괜찮다 하니 저 없는 사이에 쌓아놓고 가시더라고요. 제 마음이 동하여 한 일인데 몇 배로 마음 써주시니 감사할 따름이죠.”
어떤 이에겐 하루도 버거운 봉사일 텐데, 1년 365일 봉사에 이렇게나 열정적일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묻자 1초의 고민도 없이 “좋으니까 합니다. 아마 돈을 받고 하는 일이었으면 지금까지 이어오지 못했을 것 같아요”라고 말하는 박황균 지도자다.
교통사고 이후 마을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시작된 새마을지도자 생활은 순탄하게 흘러가는 듯했지만, 또 한 번의 고비가 찾아왔다. 교통사고 이후 건강을 제법 되찾았다고 생각한 그에게 대장암 말기라는 시련이 닥친 것이다.
“머리가 하얘졌죠. 또다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됐으니까요. 속으로 우리 딸 결혼식 올릴 때까지만 살았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다행히 수술하고 좋아졌어요. 벌써 10여 년 전의 일입니다. 그때 생각했어요. ‘아 또다시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구나. 내가 아직 해야 할 일들이 많아서 시간을 더 주는 구나!’ 라고요.”
박 지도자는 그때의 마음가짐과 ‘최고보다는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되자’라는 좌우명을 매일 되새긴다.
“제가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저뿐만 아니라 연천군새마을회가 저보다 더 열심히 움직이고 일하기 때문이에요. 제 몸을 값지게 쓸 수 있게 해주니 저는 열심히 따라갈 뿐이죠.”
말이 끝나기 무섭게 오후에는 얼마 전 집수리 활동을 한 어르신댁으로 새로 구입한 선풍기를 가져다드릴 겸, 불편한 것은 없는지 안부를 물으러 갈 예정이라며 채비하는 그다. 늘 앞에서 자랑하는 모습보다는 뒤에서 묵묵히 일하는 모습으로 열 마디 말보다 한 번의 행동으로 새마을운동을 전개하는 연천군의 박 반장 박황균 지도자. 그가 누비고 다닌 곳곳마다 따듯한 온정이, 행복이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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