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마을운동을 통해 희망을 나누는
우리들의 이야기
충남 공주시 의당면 요룡1리 마을은 37가구, 주민 71명이 전부인 작은 마을이다.
마을의 또 다른 이름은 ‘엄지’ 마을이다.
과거 엄지손가락만한 ‘작은’ 마을을 의미하던 엄지는 최근 공동체의 힘으로 ‘최고’라는 의미를 더해가고 있다.
식구 같은 이웃은 어떤 모습인지, 모두가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를 이곳 엄지마을을 통해 알 수 있었다.
고요한가 싶은 마을 안쪽으로 들어서자 주민들이 분주하게 오간다. 오늘은 새로 지은 마을회관 앞에 보도블록을 깔기로 한 날이다. 공주문예회관에서 공사 후 버려질 예정이었던 보도블록을 이른 아침부터 수거해 마을로 운반했다. 포클레인으로 땅을 평평하게 다지고, 트럭에 싣고 온 보도블록을 한쪽에 와르르 쏟자 마을남자들은 기다렸다는 듯 열 맞춰 하나하나 깔기 시작한다.
마을 정자 옆 새로 만든 분리수거장에서도 폐지와 각종 재활용품을 종류별로 분리하느라 바삐 움직인다. 마을 주민들의 나이가 많다 보니, 운동 삼아 분리수거를 할 수 있도록 날짜를 지정해 함께하고 있다. 순식간에 가득 쌓인 재활용품은 트럭에 실어 고물상에 가져가 팔고, 이를 통해 얻은 수익금은 다시 마을 주민들을 위해 사용한다.
과거 새마을지도자였던 양근승 이장은 사소한 것일지라도 일을 추진할 때마다 주민들의 의견을 묻는다. 어떤 일이든 마을 주민이 동의하고 이해해야 탈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마을의 일거수일투족을 함께 하다 보니 누구 하나 개인적인 이득을 취하려는 자도 없을뿐더러 모두의 관심사가 마을 공동체를 향해 있다. 그래서일까. 이야기하는 내내 마을에 대한 양근승 이장의 애정이 뚝뚝 묻어났다.
“공동체는 사회를 이루는 기초조직인 마을에서 이뤄져야 해요.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곳, 내가 밟고 있는 이 땅 위에서 이뤄져야 관심을 두고 지속할 수 있거든요. 내 집 앞에 꽃씨를 뿌려 가꾸는 것과 시내 로터리에 꽃씨를 뿌리는 것은 다르잖아요. 집 앞의 꽃은 성장 과정을 지켜보는 즐거움이 있는데, 내가 매일 들여다볼 수 없는 곳에 심은 꽃은 그럴 수 없으니 일회성으로 그치게 되거든요. 그러니 우리는 거창한 아니라 지금 살고 있는 마을, 매일 부대끼는 주민들과 공동의식을 나눠야 해요. 마을에서 시작된 공동체가 읍면동으로, 나아가 전국으로 뻗어나가면 모두가 잘 사는 대한민국이 될 거라 믿어요.”
주민 대부분의 고령화로 활기 없던 마을이 변화하기 시작한 건 지난 2012년 충남(시,군) 희망마을 발전계획 경진대회에 선정된 이후부터다.
“마을을 둘러보면 경치가 참 좋아요. 빼어난 관광 자원과 샘고사라는 마을의 전통도 있고,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공주 의당 집터다지기 문화도 있어요. 다들 알고 있었지만 어떻게 활용할지 몰라 방치된 무궁무진한 자원을 제대로 활용하면 꽤 괜찮은 관광자원이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양근승 이장을 비롯해 새마을회, 부녀회, 노인회, 개발위원회, 청년회, 반장회, 추진위원회, 마을 기업 등으로 이뤄진 마을공동체는 하나가 되어 마을을 샅샅이 탐색하고 기록했다. 굴과 바위, 나무에 이름을 지어 이야기를 덧붙이고, 보물 같은 관광자원을 보기 쉽게 주변 학교 학생들과 지도로 그렸다.
“저수지 근처에 소나무 두 그루가 있는데, 이름을 논개 소나무라 붙였어요. 하난 조선송인 적송이고, 다른 하난 일제 강점기 때 들어온 외송이예요. 작은 적송이 마치 논개처럼 두 팔 벌려 제 몸집보다 큰 외송을 끌어안고 저수지로 몸을 던지는 듯한 모습이거든요. 또 쾌변 바위는 큰 바위 두 개 사이에 작은 바위가 붙어 있는 모습인데, 마치 아기 궁둥이에 붙은 똥처럼 생겼다 해서 지은 이름이고요.”
양근승 이장이 마을의 명물 사진을 보여주며 설명하는 데 그 이름이 어찌나 찰떡같은 지 감탄이 절로 나왔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그는 관광자원발굴뿐만 아니라 주민 모두가 참여하는 마을을 만들기 위해서도 힘쓰고 있다. 이를 위해 직접 운영하는 체험 농가에 마을 어르신들을 일일 교사로 모시기도 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뭐 있냐며 한사코 거절하던 어르신들을 끝까지 설득해 우물 앞에서 했던 다듬이질과 밤묵 쑤기 등을 선보였다.
전통문화를 들을 기회도, 볼 기회도 흔치 않은 도시 아이들에게 엄지마을 어르신이 살아 움직이는 전통 그 자체가 된 셈이다.
“처음엔 고사했던 어르신들도 지금은 즐거워하세요. 이곳에선 아이들 구경이 어려우니, 아이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이거든요.
그리고 평생 하던 일이 누군가에게 배움을 줄 수 있는 일이라고 상상이나 했겠어요? 올해는 어르신들과 인형극을 연습해서 옆 마을과 함께 완성한 도깨비 권역 센터에서 아이들에게 선보이려고 계획 중입니다.”
양 이장은 지난 몇 년간 아직 관광객을 맞을 준비가 부족하다고 생각해 마을을 알리려는 방송사들의 방문도 만류했지만, 이제 탄탄한 기초공사를 마치고 그간 준비한 것들을 보여줘도 괜찮을 때가 된 것 같다고 말한다. 본래 있었던 자연과 문화, 역사에 리더십을 더하고 적극적인 참여를 더 해 놀라운 모습으로 발전한 마을이 빛을 발할 때가 된 것이다.
가족은 세상에 태어나 처음 맞이하는 작은 사회인 동시에 개인이 태어나 살아가다 마감하는 종착지이기도 하다. ‘일 년에 몇 번 못 보는 가족보다 매일 보는 이웃이 낫다’라는 말이 있듯 요즘의 가족은 과거와 그 의미가 많이 달라지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매일같이 안부를 나누고 한솥밥을 먹으며 마을을 위해 힘쓰는 엄지마을 주민들은 서로를 ‘가족’, ‘식구’라 부른다. 오늘 역시 마을회관 주방에서 음식 준비를 하면서도 왁자지껄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매일 같이 식사해요. 여럿이 먹으니까 맛있고 재미있잖아요, 집에서 혼자 있으면 대충 먹게 되고 심심하거든요. 부족한 게 있다 싶으면 각자 집에서 퍼다 나르느라 바빠요. 얼마 전엔 쌀이 거의 다 떨어졌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 쌀독에 쌀이 가득 찼어요. 다들 집에서 가져다 놓은 거죠.”
부녀회장인 동시에 마을의 막내인 손경인 씨가 이야기했다. 부녀회 두세 명이 부엌에서 마을 자랑을 늘어놓으면서 뚝딱뚝딱 손놀림 몇 번에 마법처럼 어묵탕, 제육볶음, 짜장에 잡채까지 상다리가 휘어질 만큼 푸짐한 식사를 완성했다.
식사를 함께한다고 해서 모두가 식구는 아니다. 마을 사람들은 혼자 사시는 어르신들 집을 제집 드나들 듯 수시로 들러 안부를 묻고, 이불 빨래 같은 힘에 부치는 것들을 새마을회에서 내 일처럼 도맡아 한다. 또 ‘서로가 칭찬하는 마을’이라는 슬로건답게 작은 일에도 넘치는 칭찬으로 서로를 격려하고 배려할 줄 알며 또 감사할 줄 안다. 이렇다 보니 지난해 ‘주민과 함께하는 생명운동 엄지마을공동체’ 사업은 주민들의 만족도가 100%에 달하는 긍정적인 평가가 이어졌으며, 2022 우수 마을공동체 경진대회 수상으로까지 이어졌다.
이에 양근승 이장은 “남들에겐 사업일지 몰라도 우리에겐 일상이에요. 모든 것을 함께 하는 것, 그것이 이웃 주민이고 삶의 공동체죠. 이러한 마음이 있어야 마을이 지속성을 갖고 유지되는 것 같아요. 또 갈등이 있더라도 지혜롭게 해결할 수 있고 이런 경험이 쌓이면 모두의 행복 완성도가 높아지게 되지 않을까요?”
타인에 대한 배려보다 내가 먼저인 요즘 시대에, 공주 엄지마을의 이야기는 잊고 있던 가장 중요한 것을 발견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것은 지금 우리에게 다시 필요한, 그리고 앞으로도 지켜 나아가야 할 ‘함께’라는 가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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