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마을을
만나다

글. 김채은
사진. 전경민

늘 솔선수범하고,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해야 할 일이 있다면 남보다 먼저 실천하고, 이웃에게 힘이 될 수 있는 ‘새마을지도자’이고 싶습니다.



불길 앞에 선 새마을지도자
신기리의 하루를 지켜내다

김일섭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협의회장


지난 5월, 경북 구미시 선산읍 신기리의 평화롭던 오후가 순식간에 깨어졌다. 한 농가 주택에서 시커먼 연기가 폭발하듯 뿜어져 나온 것이다. 농가와 민가, 그리고 푸른 산지가 맞닿은 시골 마을에서 작은 불씨는 자칫 큰 피해로 번질 수 있었다. 모두가 당황해 발을 동동 구르던 위기의 순간, 김일섭 협의회장은 물러서지 않았다. 매캐한 연기와 뜨거운 열기 속으로 향하는 그의 발걸음에는 오직 ‘내 이웃과 고향을 지켜야 한다’라는 책임감뿐이었다.






긴박했던 순간, 마을을 먼저 생각하다

그날 김 회장은 집 앞 복숭아 과원에서 한창 봉지 씌우기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한 해 농사의 결실을 준비하던 평화로운 정적을 깨뜨린 건 담장 너머로 들려오는 주민들의 웅성거림과 비명이었다. 심상치 않은 기운에 과원 밖으로 뛰어나온 그의 눈앞에 믿기 힘든 광경이 펼쳐졌다. 이웃 농가에서 거대한 불길이 치솟고 있었던 것이다. 순간 김 회장의 머릿속에 얼마 전 경북 지역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구호 물품을 전달하기 위해 찾았던 산불 피해 현장, 그리고 영덕군 산불 복구 현장에서 참꽃나무를 심으며 마주했던 참담한 잿더미의 풍경도 선명했다. 작은 불씨 하나가 얼마나 잔인하게 삶의 터전을 앗아가는지 몸소 목격했던 그였기에 판단은 몇 초도 걸리지 않았다. ‘지금 여기서 막지 못하면, 우리 마을이 사라진다!’ 라는 생각뿐이었다. “마을 일을 하다 보면 어느 집에 누가 살고, 어떤 사정이 있는지 자연스럽게 알게 됩니다. 그 집도 당시 비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누구에게 먼저 연락할지 망설이기 보다 119 신고가 먼저라고 판단했습니다. 사실 불길이 더 커지기 전에 막아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죠.”
현장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적치물에서 시작된 불길은 이미 걷잡을 수 없이 커졌고, 열기를 이기지 못한 소형 가스통들이 “쾅! 쾅!” 소리를 내며 터져 나갔다. 파편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상황. 김 회장은 주민들을 향해 “멀리 대피하세요!”라고 소리친 뒤 주저 없이 소화기를 들고 불길을 향해 돌진했다. 하지만 이미 커진 화마는 소화기 한두 대로는 역부족이었다. 그 때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 지난겨울 마을에 설치된 ‘비상소화장치함’이었다. 평소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장치함을 열어보고 사용법을 숙지해 두었던 그의 꼼꼼함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거침없이 장치함을 열고 70m에 달하는 소방호스를 끌어당겼다. 밸브를 열자 엄청난 수압이 실린 호스가 그의 몸을 사정없이 밀어냈지만, 김 회장은 이를 악물고 호스를 붙잡은 채 불길의 중심을 향해 물줄기를 퍼부었다. 30년 넘는 직장 생활동안 몸에 익힌 소방 훈련과 ‘꼭 막아야 한다’는 집념이 만들어낸 기적 같은 초기 진화였다.






서울내기 직장인, 고향의 ‘새마을지도자’가 되다

위험을 몰랐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새마을지도자라는 이름이 주는 무게와 이웃에 대한 사랑이 공포를 이겼을 뿐이다. 김일섭 회장에게 선산읍은 어린 시절 추억이 곳곳에 남아 있는 고향이다. 구미시 선산읍 신기리는 깊은 역사와 농촌의 정취를 간직한 마을로, 고려 태조 왕건과 후백제 견훤의 전투 이야기가 전해지는 냉산이 가까이 있고 멀지 않은 곳에는 낙동강이 흐른다.
여섯 남매의 맏이이자 외아들이었던 그는 초등학교 시절 서울로 떠난 후 줄곧 타향에서 치열한 직장인으로 살아왔다. 그러다 6년 전 홀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마침내 귀향을 결심했다. 하지만 수십 년 만에 돌아온 고향 농촌의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계절마다 시기를 놓치면 안 되는 농사일은 서툴기만 했고, 환갑이 훌쩍 넘은 나이임에도 마을에서는 여전히 ‘쌩쌩한 청년’ 대접을 받으며 일손을 보태야 했다.
처음부터 새마을지도자를 꿈꾼 것은 아니었다. 농촌 생활에 조금씩 적응하던 어느 날, 마을에 풀이 무성해져 주민들이 불편을 겪는 일이 있었다. 김일섭 회장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선산읍 행정복지센터를 찾았고, 그 과정에서 새마을 담당자를 만나게 됐다. 그때 마을마다 새마을지도자가 있어 환경정비와 나눔 활동처럼 주민 생활과 가까운 일을 살핀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관심은 곧 행동으로 이어졌다. 신임 이장이 취임할 무렵, 그는 직접 새마을지도자로 활동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고, 그렇게 신기리 새마을지도자로 첫발을 내디뎠다. “마을 문제를 상의하러 갔다가 우연히 새마을 담당자를 만났습니다. 주민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마을에 필요한 일을 살피는 모습이 제가 생각해 온 봉사와 맞닿아 있었습니다. 그동안 살아오며 쌓은 경험으로 고향 이웃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고 싶었습니다.”
새마을지도자가 된 뒤 김 회장은 마을 일에 빠짐없이 참여하려 애썼다. 예초와 방역, 환경정비처럼 일상 가까이에서 필요한 일부터 이웃을 위한 나눔 활동까지 마을 곳곳에는 지도자들의 손길이 닿아 있었다. 마을을 깨끗하게 가꾸고, 이웃의 안부를 살피며 주민들이 함께 어울릴 수 있도록 돕는 일도 그가 생각하는 새마을지도자의 몫이었다.
그중에서도 김일섭 협의회장이 가장 뜻깊게 여기는 활동은 농약 공병과 비료 포대 등 농촌 폐자원을 수거하는 일이다. 농촌에서는 농번기가 지나면 농약병과 폐비닐, 비료 포대 등이 곳곳에 남기 쉽다. 김 회장에게 이는 단순한 쓰레기가 아니었다. 지금 세대가 제대로 정리하지 않으면 다음 세대에게 더 큰 부담으로 돌아갈 수 있는 문제였다. 선산읍 새마을지도자들은 각자 마을을 돌며 폐자원을 모으고, 이를 정기적으로 환경공단에 매각한다. 그렇게 마련한 수익금은 반찬·김치 나눔과 어르신 식사 지원 등에 쓰인다. 환경을 지키는 일이 다시 이웃을 돕는 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폐자원 수거는 김 회장에게 더욱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마을의 오늘을 지키고, 내일을 심다

이번 일을 겪으며 김일섭 협의회장은 농촌 지역의 안전을 위해 평소의 대비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절감했다. 화재가 발생했을 때 곧바로 119에 신고하고 안전한 곳으로 대피할 수 있도록 주민들이 기본 요령을 익혀두는 일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산자락 입구처럼 화재 확산 위험이 큰 곳에는 비상소화장치함이 더 마련되어야 한다는 생각도 커졌다. 실제로 이번 화재 이후 주민들도 비상소화장치함의 위치와 대피 방법을 다시 살피기 시작했다. ‘불조심’이라는 말이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마을의 일상을 지키는 약속임을 확인한 것이다.
김일섭 협의회장은 앞으로도 선산읍 새마을가족들과 힘을 모아 지역에 필요한 활동을 꾸준히 펼쳐가고자 한다. 특히 탄소중립을 위한 나무 심기 활동이 선산읍 곳곳에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산림조합 등과 협업할 계획이다. 폐자원 수거로 환경을 지키고, 나무 심기로 미래를 준비하는 일. 그가 바라보는 새마을 활동은 오늘의 삶터를 돌보는 동시에 다음 세대가 살아갈 내일을 가꾸는 일이다. 김 회장이 생각하는 새마을운동의 가치 역시 ‘더불어 잘 사는 것’에 닿아 있다.
선산읍이 속한 구미시는 도농 복합도시이지만, 선산읍 역시 인구 감소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렇기에 서로의 안부를 살피고, 마을의 일을 나누어 맡으려는 마음이 더욱 소중하다. 김 회장은 새마을운동의 기본정신이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일상 속 작은 행동에서 시작된다고 믿는다. “제가 사회에서 배운 지식과 경험을 동료 지도자들과 마을 주민들에게 나누고 싶습니다. 늘 솔선수범하고,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는 지도자로 남고 싶습니다. 해야 할 일이 있다면 남보다 먼저 실천하고, 이웃에게 힘이 될 수 있는 지도자이고 싶습니다.”
오늘도 김일섭 협의회장은 신기리의 일상을 살핀다. 불길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았던 그날처럼, 그의 새마을활동은 지금도 마을 가까이에서 이어지고 있다. 묵묵히 마을을 살피는 손길, 그 손길이 쌓여 신기리의 하루는 조금 더 안전해지고, 선산읍의 내일은 조금 더 따뜻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