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마을운동을 통해 희망을 나누는
우리들의 이야기
새마을운동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10주년을 맞이했다.
빈곤국이었던 나라가 이제 세계 다른 나라에 그 노하우를 전수하는 나라가 되었다.
새마을운동기록물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추천하고 등재되기까지
모든 과정을 지켜본 전택수 교수를 만나 그날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한창 새마을운동이 진행되던 시기에 태어나 성장하면서 그 혜택을 직접 받은 세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농촌의 빈곤과 미국의 원조를 기억하는 세대니까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심사는 2년에 한 번, 홀수 해에 합니다.
회원국에서 2점만 선정해서 후보로 올릴 수 있어요. 올라온 후보들로 본선 심사를 하는데요, 철저히 비밀회의로 합니다. 우리나라는 기록유산의 종주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기록유산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새마을운동기록물이 등재되기까지의 과정은 정말 극적이었습니다. 시작은 등재되기 직전의 심사위원회부터였으니까요.
새마을운동기록물이 등재되기 직전 2011년 맨체스터 제10차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에서였어요. 당시 우리나라의 일성록과 광주민주항쟁기록물이 본선에 올랐습니다. 국제자문위원회는 철저한 보안 속에 이루어지는 비밀회의입니다. 회의가 끝나고 결과발표 전이었는데, 친분이 있었던 당시 심사위원장이 저를 살짝 부르더니 귀에다 “기록유산 선정이 확정되었다”라고 속삭였습니다. 그 후 폐막 파티를 할 때였을 거예요. 위원회 쪽에서 한국에 차기 회의 후보로 올릴만한 기록유산이 또 있느냐고 묻는 거예요. 그 순간 ‘새마을운동’이 생각나 살짝 정보를 흘렸죠. ‘살짝 흘렸는데, 덥썩 문다’라는 말이 있죠? 위원회 쪽에서 그 기록물을 다음번 심사위원회에 꼭 올리라고 적극적으로 제안을 해오는 것이었어요. 그러면서 차기 회의를 한국에서 하자고까지 제안했죠. 국제회의 개최는 저 혼자 결정할 문제가 아니어서 그 즉시 외교부에 의견을 타진했습니다. 그리고 문제가 없다는 외교부의 답을 받고서 그 자리에서 2013년 제11차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가 한국으로 정해졌습니다.
애초에 새마을운동기록물이 심사위원회 본선 심사에 오른 것 자체가 심사위원회의 제안으로 시작된 것이었기 때문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선정 자체는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유네스코뿐만 아니라, 전 세계 인류 공통의 화두는 바로 빈곤 탈출이기 때문이죠. 새마을운동기록물은 그 빈곤에서 어떻게 탈출하여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이룩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살아있는 기록이었습니다. 심사위원회는 새마을운동기록물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선정하며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논쟁의 여지가 필요 없는 기록물이며, 전 세계의 기록물이다”라고 말입니다.
오랜 시간 전 세계는 빈곤에서 탈출하기 위해 몸부림쳤습니다. 우리나라도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극빈국이었죠. 그랬던 나라가 짧은 기간에 빈곤에서 탈출하고, OECD에 가입했으며, 첨단의 발전된 나라를 이뤘습니다. 이렇게 되기까지의 기록이 바로 새마을운동기록물에 모두 담겨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리고 이 기록은 앞으로 우리나라가 지속 발전을 위한 중요한 지표가 되어줄 것입니다. 새로운 것은 지난 세대들이 남겨둔 기록에 담겨 있는 문제해결 방식을 어떻게 현대적으로 해석하고 적용하느냐에 달린 것이기 때문이죠. 그런 점에서 빈곤을 탈출하고, 국민들에게 ‘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 준 이 새마을운동기록물은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소중한 가치가 있습니다.
2030년 세계박람회가 부산에서 개최된다면, ‘새마을운동 부스를 만들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MZ세대들은 중요한 기록물을 글자로 읽는 걸 좋아하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 새마을운동 부스에서는 AI, 챗GPT, 메타버스, 버츄얼 등의 기술을 이용해 가상현실, 또는 증강현실과 같은 체험형 부스를 선보이는 겁니다. 요즘 젊은 친구들이 좋아하는 게임 형식이어도 좋고 미션 수행 형식이어도 좋겠죠. 직접 참여해 보는 과정을 통해 가상의 새마을운동을 체험하게 하는 것이죠.
간단합니다. 우리 선조들은 다양한 분야의 방대한 기록을 남겼어요. 그리고 이 기록들은 지방 곳곳에 숨어 있습니다. 어렵게 찾아낸 보물들을 전시관에만 소중히 전시해 놓는다면 그 기록은 더 이상 살아있는 기록의 역할을 할 수 없지 않을까요? 젊은 세대들이 이 기록을 접하고 보고 활용하게 하기 위해선 그들이 보는 방식으로 볼 수 있게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 시작이 바로 전자문서화이고 디지털화입니다.
핵심을 찌르는 질문인데요? 과거 정신문화연구원, 현 한국학중앙연구원입니다. 그곳에서 일을 하면서 약간의 정체성 혼란이 있었습니다. 경제학자인 내가 정신문화연구를 한다니…. 그러던 차에 주변에서 전혀 뜻밖의 요청이 들어왔었습니다. 문화적 요인이 경제 발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경제학적 관점으로 이야기해달라는 것이었죠. 실제로 우리나라의 특수한 문화적 요인이 새마을운동이라는 인식의 전환을 만났을 때 이토록 빠르고 눈부신 경제발전의 결과를 만들어 냈으니까요. 집단 문화에서 리더의 중요성, 가족의 복지를 위해 개인의 희생이 가능한 문화, 직장 생활에서의 상하식 서열과 개인보다는 전체의 이익을 우선시 하는 분위기, 해외에까지 나가 나라를 일으키고자 했던 산업 역군들의 노력은 외국의 어떤 경제 발전 기록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사례입니다. 말 그대로 선조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교육이 되고, 그 교육이 지금의 경제 발전을 이루는 근간이 되었던 것이죠.
결국 문화예술과 경제학도 떼어놓을 수 없는 함께 있어야만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는 융합의 영역인 것입니다.
매번 이전과 전혀 다른 새로운 것을 찾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씩만이라도 찾으려고 노력을 한다면, 새로움 하나하나가 모여 전혀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새로운 것, 하나씩만 찾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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