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마을을
만나다
글. 장희주
사진. 홍승진
20년 굽이진 새마을의 길,
생명의 맥박을 깨우다
한종환 충청북도 옥천군협의회장
한종환 협의회장이 새마을운동과 함께 걸어온 20여년은 ‘봉사’라는 가치가 그의 삶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시간이었다. 마을 환경을 정비하고, 이웃의 빈틈을 살피며, 계절마다 필요한 손길을 보태는 일은 그에게 특별한 일이 아닌 일상이 되었다. 그렇게 몸에 밴 이타심은 결정적인 순간 쓰러진 시민을 구하는 용기로 이어졌다. 그날의 선택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오랜 시간 묵묵히 이어온 봉사가 한종환 협의회장의 삶 자체였기에 가능한, 어쩌면 당연한 행동이었다.
일상이 된 봉사, 삶이 된 새마을
시작은 거창한 사명감도, 분명한 목표도 아니었다. IMF 외환위기 당시 하던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한종환 협의 회장은 고향 옥천으로 돌아왔고, 방범대 활동을 하며 마을 어르신들과 자연스레 어울리기 시작한 것이 그 출발이었다. 마을 행사가 열리면 일손을 보태고 공동 작업에도 빠지지 않고 참여했다. 그렇게 쌓인 시간은 어느새 ‘새마을’이라는 이름의 활동으로 이어졌다.
“농촌 삶 속에 함께하다 보니 새마을운동이 결코 먼 이야기가 아니더라고요. 봉사할 수 있는 분야가 의외로 다양하다는 사실도 알게 됐죠. 이웃과 함께하는 공동체 정신에 공감하며 그렇게 하나씩 실천하다 보니, 어느 순간 ‘새마을지도자’라는 이름이 제 삶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오랜 시간 새마을지도자로 활동하며 그는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진심 하나로 묵묵히 봉사의 곁에 머문만큼 그가 남긴 발자취도 선명하다. 주민들과 힘을 모아 마을 환경을 정비하고, 아이들의 배움터인 시골 학교를 보수하는 일은 물론, 귀농·귀촌인들의 정착을 도와 고령화된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는 일에도 앞장섰다. 그중에서도 외래식물 가시박 제거에 힘을 쏟아 생태계를
지켜낸 일은 지금까지도 가장 보람찬 일로 손꼽는다. 특히 깨끗해진 강변길과 한층 밝아진 마을 분위기를 마주할때면 “새마을운동이 걸어온 길이 틀리지 않았구나”하는 뿌듯함이 자연스레 밀려온다.
그가 걸어온 20년의 궤적 중에서도 유독 가슴 깊이 각인된 장면이 있다. 안내면 협의회장을 맡고 있던 2018년의 어느 날이었다. “제도권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어려운 가구가 있다”는 면사무소의 연락을 받고 찾아간 곳은 차마 집이라 부르기 어려울 만큼 처참한 공간이었다. 산골 깊숙한 곳에 자리한 그 집은 천장이 내려앉아 허리를 숙여야만 겨우 들어설 수 있었고, 내부에는 수년간 방치된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한종환 협의회장은 그 모습을 본 순간, 이를 단순 일회성 봉사로 끝낼 수 없음을 직감했다.
“재료비는 최대한 아끼고 집을 고치는 일은 직접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거의 집 한 채를 새로 짓는 일과 다름없었죠. 조립식 패널로 내부를 나눠 주방과 화장실을 만들고, 정화조와 보일러도 새로 설치했습니다. 그렇게 다시 생활을 시작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드렸어요. 집을 수리해 드린 것뿐인데 어르신의 마음에도 변화가 생겼다고 하더라고요. 폐쇄적으로 지내던 생활에서 벗어나 마을 사람들과 안부를 나누고 조금씩 관계를 맺기 시작하셨대요.”
한종환 협의회장에게 이 경험은 봉사의 의미를 가슴 깊이 새긴 계기가 됐다. 그가 생각하는 변화란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한 사람의 삶이 전보다 조금 더 따뜻해지는 것. 그 마음은 20년의 세월 속에서 그의 몸에 배어 단단한 태도가 되었고, 그 태도는 결국 위기의 순간 망설임 없는 행동으로 이어졌다.
위기의 순간을 살린, 봉사 정신
지난 겨울, 교통약자 이동지원센터에서 근무하던 그는 여느 때처럼 승객을 모시고 이동 중이었다. 그때 길가에 쓰러진 시민 한 명이 눈에 들어왔다. 유난히 추운 날씨였고, 상황은 한눈에 봐도 위급해 보였다. 그는 곧바로 승객에게 양해를 구하고 차량을 세운 뒤 현장으로 달려갔다.
“누군가 쓰러져 있는 게 보이자마자 본능적으로 ‘이건 지나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바로 뛰어갔죠. 가까이 가 보니 이미 숨을 쉬지 않는 상태였습니다. 마침 길 건너편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한 남성분이 119에 신고를 하고 있었고, 저는 곧바로 심폐소생술을 시작했습니다.”
전문적으로 심폐소생술을 배운 적은 없었다. 다만 2년 전 새마을 월례회의 때 진행한 소방안전교육이 전부였다. 그러나 ‘언젠가 이런 상황이 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하며 수없이 되뇌었던 생각이 그의 몸을 움직였다. 그는 119와 영상 통화를 하며 기도를 확보하고 필사적으로 가슴을 압박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반응이 없던 몸에서 미미한 움직임이 느껴졌고, 이내 숨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계속 심폐소생술을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컥, 컥’ 하면서 기도가 트이기 시작했어요. 손을 대보니 숨을 쉬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조금 전까지만 해도 힘이 전혀 없던 분이었는데, 의식이 돌아온 것 같아서 손을 잡아드렸더니 제 손을 꽉 잡으셨어요. 그 순간 정말 고마웠죠.”
쓰러져 있던 시민이 다시 숨을 몰아쉬던 그 순간, 한종환 협의회장은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쉴 수 있었다. 이 일은 지역 사회에 큰 울림을 주었지만 정작 그는 담담했다. 용기의 원천을 묻는 물음에 그는 20년 간의 새마을 활동이 남긴 ‘책임감’을 꼽았다.
“새마을 협의회장을 맡지 않았다면 그런 용기가 있었을까 싶어요. 협의회장으로 활동하며 사람들 앞에 서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반복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용기도 생긴 것 같습니다. 원래 나서는 걸 좋아하는 성격은 아니지만 필요할 때는 나서야 하잖아요. 그런 선택이 일상이 되면서, 생활 속 습관으로 몸에 밴 것 같아요.”
지금도 살아 움직이는 옥천의 새마을
한종환 협의회장에게 새마을은 지금, 이 지역에서 살아 숨 쉬며 역할을 다해야 하는 ‘현재진행형’의 가치다. 그가 이끄는 옥천군새마을회가 지역의 크고 작은 현안마다 가장 먼저 앞서 움직이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옥천의 대표 축제인 묘목축제, 지용제(정지용 문학제), 포도축제 등 행사장 곳곳에는 늘 새마을 회원들의 땀방울이 서려 있다.
단순히 식당을 운영해 수익을 내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하루 100명에 가까운 회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합리적인 가격으로 손님을 맞이하는 과정 자체가 지역 공동체를 함께 꾸려가는 하나의 ‘문화’가 됐다. 그렇게 발생한 수익은 당연하게도 다시 지역 사회로 환원된다.
“농사도 중요한 활동 중 하나예요. 지난해에는 휴경지를 활용해 들깨와 배추를 심었죠. 들깨 농사는 날씨와 병충해 때문에 아쉬움이 남았지만, 배추 1,500포기는 김장해 경로당과 어려운 이웃들에게 나눠드렸어요. 또 풀을 깎아 생긴 수익금으로 마련한 풀빵 기계가 있는데 겨울이면 그걸 차에 싣고 경로당을 하나하나 돌면서 따뜻한 국화빵을 나눠드리고 있어요. 계절마다 그때그때 필요한 일을 찾아 움직이는 것, 그게 옥천군새마을회의 새마을 정신입니다.”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 자리를 지켜왔지만 그가 그리는 내일은 여전히 선명하다. 군민들이 변화를 직접 체감할 수 있는 실질적인 활동을 이어가는 것, 그리고 옥천군새마을회가 특정 세대의 전유물이 아니라 다음 세대에게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도록 토대를 다지는 일이다.
“저에게 새마을지도자는 봉사이자 책임이에요. 화려하게 앞에 나서기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먼저 움직이고 묵묵히 실천하는 사람이 새마을지도자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모두가 함께 잘 살고, 함께 행복해질 수 있도록 꾸준히 앞장서는 사람이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오늘도 한종환 협의회장은 ‘새마을’이라는 이름으로 묵묵히 길을 나선다. 그의 발걸음이 닿는 자리마다 옥천의 골목골목에는 따뜻한 온기가 스며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