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공감
새해 떠오르는 첫해처럼
희망 가득한 새마을운동
다가오는 새해, 우리는 과거의 가치를 되새기며
새로운 희망을 그려본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시작을 맞이하는 이 시기에
과거의 가치를 되새기며
더 나은 내일을 그려보는 것은 어떨까.
과거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했던 새마을운동은
그 시절의 따스함과
공동체 정신을 되살리며 잃어버린
소중한 가치를 다시 일깨워 왔다.
그리고 앞으로 맞이할 새로운 내일에 대한
긍정적 기대와 설렘을 품게 한다.
자극에 둔감해진 시대,
‘새로움’을 다시 생각하다
언제부턴가 텔레비전에서 뉴스를 보는 일이 재미없어졌다. 뉴스를 보는 즐거움은 내가 직접 체험할 수 없는 세상의 이야기를 보고 들으며 간접경험을 할 수 있다는 데에 있다. 거기에는 희로애락으로 점철된 사람들의 삶이 가감 없이 날것으로 전해질 것이라는 기대가 있어서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을 보는 것보다 진지하고 중요하게 생각되곤 했다. 그래서 뉴스를 보며 분노를 느끼거나 눈물을 글썽이고, 마음 아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이제 그런 기대는 먼 옛날의 일처럼 아득해졌다. 뉴스는 범죄나 다툼을 전하는 코너로 전락했고 새로운 소식보다는 쟁점이 되는 사건에 날마다 꼬리 하나를 더 달거나 부풀려 늘이기가 일쑤다. 미담보다는 자극적인 사회고발에 초점을 맞추고 시청자를 부추겨 여론몰이를 하는가 하면 왜곡된 보도로 시청자들이 스스로 판단하는 데에 혼선을 주기도 한다.
새로운 것에 대해 생각해 본다. 새롭다는 말은 긍정적인 의미가 강하고 그 말을 듣는 순간 알 수 없는 설렘까지도 생겨난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좋아하고 새로운 것에 열광한다. 그런데 현대사회로 오면서 그 새로움은 물질적인 것에 한정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거의 날마다 새로운 기기들이 등장하고 새롭다는 말은 그들만의 무대가 되었다. 어쩌다 새롭다는 말만으로도 가슴 설레던 때는 사라지고 물질만능 세상이 되었을까. 이제 사람들은 스스로 찾고 연구하기보다 인공지능을 통해 살아가는 일에 익숙해지고 있다. 생각하고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나날에 자신도 모르게 빠져들게 되었다. 그래서 매스컴은 더 자극적이고 충격적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는 걸까. 둔감해진 사람들의 가슴을 두드리는 방법이 그것이었을까.
버스정류장 청소 등 내 지역 가꾸기로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 가는 울산광역시새마을회
과거의 지혜, 현재의 대안:
새마을운동의 재발견
다행인 것은 새로움만이 최고가 아니라는 각성이 한쪽에서는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소위 레트로라는 말의 등장인데 레트로(retro)는 추억이라는 뜻으로 과거의 기억을 그리워하면서 그 시절로 돌아가려는 흐름을 뜻한다. 패션이나 음악, 음식, 미디어 콘텐츠까지 최근 트렌드의 중심이 되고 있다. IT가 급속도로 발전하여 여러모로 편리한 세상이 되었지만, 마음 속속들이 행복을 느끼기에는 충분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게 된 사람들이 있다. 물질만능 위기, 경제 위기, 정치 위기 등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고자 하는 염원들이 레트로를 선택한 것이다. 레트로는 단순히 과거를 추앙하고 따라 하려는 경향이 아니다. 나름의 재해석을 통하여 재탄생시키려는 열정이다.
얼마 전 한 단체에서 진행된 야유회에 참석했다가 청도를 경유한 적이 있었다. 청도는 새마을운동의 발상지로 알려진 도시이다. 굳이 그곳에 버스를 세우는 것이 조금 못마땅하기도 했다. 형식적이고 틀에 박힌 기념관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그곳에 도착했을 때 주차장이 버스나 승용차로 가득 차 있어서 깜짝 놀랐다. 잘 정돈된 길에는 남녀노소의 사람들이 줄을 지어 삼삼오오 걸어가고 있었는데 어르신들에게야 추억 여행이 될 수도 있지만 젊은 사람들은 어떻게 이곳을 선택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했던 기억,
즐거웠던 새마을의 아침
나에게 새마을운동은 ‘새벽종이 울렸네’라는 노랫소리와 함께한다. 일요일 아침 7시면 어김없이 동네 큰 스피커에서 그 노래가 울려 나왔고 부모님이 깨우지 않아도 벌떡 일어나 빗자루를 들고 마을 회관 앞으로 갔다. 일요일 아침에 만난 우리들은 학교에서 만나는 것과는 달리 정말 가족처럼 부둥켜안거나 간지럼을 태우면서 서로의 덜 깬 잠을 깨웠다. 그리고는 애향반장이 나누어 주는 대로 삼삼오오 나누어 동네 골목을 쓸었다. 생각해 보니 지금처럼 비닐봉지가 흔하게 날아다닐 정도로 쓰레기가 많은 것도 아니었는데 왜 그리 열심히 흙길을 쓸었는지 모르겠다. 각자의 집 앞이 아니어도 상관 없었고 할당량이 많거나 적어도 상관없었다.
어쩌다 운 좋은 날에는 지나가던 어르신께 용돈을 받기도 했고 먹을 것을 받기도 했다. 생각해 보면 참 불평불만이 없던 때였다. 누군가를 미워하지도 않았고 왕따나 외톨이라는 말도 없던 때였다. 청소가 끝나면 마을 이장님이 챙겨주는 간식을 먹기도 했고 누군가가 가지고 온 과자를 나누어 먹기도 했다. 아무것도 나눌 게 없는 날도 많았지만, 마냥 즐거운 때였다. 새마을운동은 그렇게 즐겁고 희망찬 운동이라는 의미로 내게 저장되어 있다. 그리고 새마을운동은 여전히 우리 마음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내일의 희망과 미래를 품은
새마을운동
새마을운동이 여전히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이유는 레트로에 대한 열망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 시간을 경험했든 하지 않았든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정보를 통해서 역사를 알고 그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그 열정의 시간을 공유해 보고 싶은 것이다. 새로운 것은 이미 지난 경험을 토대로 만들어진다.
현재의 무수한 불협화음들이 마을 길을 쓸던 그때로 돌아간다면 순식간에 잠재워질 것만 같다. 험하고 눈살 찌푸려지는 뉴스들이 순식간에 푸르른 산과 강으로 정화될 것만 같다. 새마을운동이 아직도 우리 삶과 일상에서 함께하는 것은 더 나은 내일에 대한 희망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뜻이다. 언젠가 있었던 한 목소리의 세상을 현재로 다시 불러오고 싶다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