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장을 든 슈퍼히어로
부산의 랜드마크인 광안리 해수욕장에서 북쪽으로 3킬로미터 떨어진 곳. 하늘을 덮은 수십 개의 전깃줄 아래 오래된 다세대 주택이 빽빽하게 들어선 조용한 동네 망미1동이 이른 아침부터 북적인다. 말소리를 따라 언덕을 오르자 보이는 반가운 녹색 조끼들. 등에는 ‘수영구 뚝딱이봉사단’이라고 적혀 있다. 부산 수영구협의회 산하의 수영구 뚝딱이봉사단은 주거 환경이 열악한 취약계층의 집수리를 돕기 위해 2015년 3월 결성된 단체로, 매년 20가구 내외의 집을 손보고 있다.
“아침부터 억수로 덥다 마.” 한때는 싱크대였을 나뭇조각들이 분해된 채 봉사자들의 손에서 손으로 옮겨지고 있었다. 한 차례 작업이 끝나자 봉사자들은 삼삼오오 그늘에 모여 앉아 땀을 닦아 낸다. 푹푹 찌는 더위에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날이건만, 봉사자들의 얼굴엔 은은한 미소만 가득하다. 작업을 총괄하던 임병석 수영구협의회장도 그제야 한숨 돌리는 모양새다.
“오늘은 망미동에 있는 두 집을 수리해요. 두 집 다 홀몸 어르신이 거주하는 집이라 도움의 손길이 꼭 필요한 곳들이에요. 이 집은 주방과 다락방의 도배를 새로 하고, 장판도 갈 거예요. 싱크대도 교체할 거라 오전에 기존 싱크대를 철거해 둬야 하죠. 그래야 오후에 싱크대 전문 봉사자들이 와서 설치할 수 있어요. 또 다른 집은 방과 거실의 도배와 장판을 새로 할 거예요.”
임병석 부산 수영구협의회장
집수리 대상자 선정은 수영구청과의 협력으로 이뤄진다. 우선 동네 주민의 사정을 잘 알고 있는 각 동주민센터의 복지과에서 도움이 필요한 집들의 목록을 추려 구청에 보고한다. 그 후 복지과 직원과 수영구 뚝딱이봉사단이 팀을 이뤄 현장 답사를 다닌다. 목록에 있는 모든 집을 방문해 지원이 필요한 정도와 수리가 필요한 부분을 꼼꼼히 기록한다. 이렇듯 공정한 과정을 거쳐 대상지가 선정되면 봉사단은 자체 회의에 들어간다. 집 간의 거리와 작업 시간을 계산해 가장 효율적인 일정을 세운다.
상생을 부르는 배려하는 마음
수영구 뚝딱이봉사단은 지난 5월 18일부터 6월 2일까지 16일간 총 17개의 집을 수리했다. 봉사자들이 평일에는 생업에 종사하기 때문에 봉사 활동은 주말에만 이뤄진다. 실질적으로는 16일이 아닌 불과 6일 만에 17가구를 보수하는 셈. 하루에 2곳에서 많게는 4곳까지 작업한다. 도배와 장판, 싱크대와 싱크볼 교체가 주를 이룬다. 간혹 욕실의 타일을 보수하거나 현관의 페인트칠을 새로 하기도 한다. 하나같이 간단한 작업이 아니다. 일견 불가능해 보이는 일정이나 임병석 회장은 괜찮다며 아주 자신만만하다.
“수영구협의회 회원이 약 300명인데, 수영구 뚝딱이봉사단은 수영구의 10개동 회장들을 주축으로 90명 정도 모였어요. 규모가 꽤 있죠. 매번 같은 봉사자가 나와 일을 하는 게 아니라 그날그날 일정이 맞는 사람들이 나와요. 게다가 이들 대다수가 인테리어 분야에 종사하는 전문가들이에요. 집수리에는 아주 잔뼈가 굵은 베테랑들이죠. 하루에 고쳐야 할 집이 여러 곳이면 팀을 나눠 동시에 진행해요. 사람이 한쪽에 몰려 있는 게 아니라 각 집에 맞는 기술자들을 분산시켜 책임지고 작업하도록 해요. 저는 회장으로서 모든 집을 돌아다니며 진두지휘합니다.”
뚝딱이봉사단으로 활동 중인 수영구 10개동 협의회장들
활동의 시작은 보통 아침 8시. 끝나는 시간은 대중없다. 간혹 시공 종류에 따라 이튿날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가령 옥상 방수의 경우, 날씨에 따라 건조 시간이 달라지는데 넉넉히 이틀을 잡는 편이다. 흔쾌히 주말을 모두 반납하고 이웃을 위해 재능 기부를 펼치는 수영구 뚝딱이봉사단. 그 원동력은 무엇일까. 답은 임병석 회장의 말에서 얻을 수 있었다.
"주거 환경이 열악한 어르신들의 집이 쾌적하고 깨끗하게 탈바꿈되는 걸 보고 있으면 정말 제 일처럼 기쁘고 뿌듯해요. 저는 언제나 그 집에 내가 산다는 마음으로 임해요.”
어떤 대가나 이익을 바라지 않는다. 그저 이웃의 아픔에 눈길이 가고 마음이 가서 다가가 손을 잡아주고 싶을 뿐이다. 이는 나와 이웃, 나아가 온 세상을 다정하게 어루만져주는 귀중한 힘이다.
건강하고 행복한 공동체를 위해
새마을운동은 먹고사는 문제가 시급했던 70년대만 하더라도 글자 글대로 ‘잘살기’ 운동이었다. 선진국 반열에 오른 지금, ‘건강하게’ 잘 먹고 ‘행복하게’ 잘살자는 조건이 붙었다. 시대적 요구에 맞춰 수영구협의회의 활동 또한 변화하고 있다. 건강하고 행복한 공동체 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과거 성과가 좋았던 사업은 계속해서, 함께 사는 지구촌을 위한 새로운 사업은 과감하게 추진한다. 그 바탕에는 우리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간다는 자긍심이 있다.
“우리나라가 어려운 시기엔 늘 새마을가족이 같이 있었던 것 같아요. 1998년 IMF 금융위기 때 금 모으기 운동에 참여했고, 2007년 태안 앞바다에서 유조선이 침몰했을 때도 기름띠 제거 작업에 손을 보탰어요. 2014년 부산 기장군에 큰 수해가 났을 때는 수해 복구 작업을 도왔죠.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 기간에는 수영구부녀회와 함께 수제 마스크를 만들어 나눠줬고요. 이렇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무언가 할 수 있다는 게 너무 가슴이 벅차요.”
이웃에 대한 애정을 토대로 수영구협의회는 주민들에게 필요한 사업이 무엇일지 고민한다. 그렇게 나온 것이 10여 년 전 각 동주민센터에 설치한 ‘새마을무료공구대여센터’. 멍키스패너, 해머드릴, 전기톱, 용접기 등 가정에서 비치하기 어려운 생활 공구를 주민들에게 무료로 대여해주는 사업이다. 또한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주 2회씩 ‘우리 동네 안전지킴이활동’을 하고 있다. 주민들이 안전 귀가할 수 있도록 방범 역할을 하면서 공공시설물도 살핀다. 고장 난 가로등이 보이면 구청에 바로 신고하는 식이다.
한편, 바다의 도시 수영구는 여름철 광안리 해수욕장에서 대여 및 판매하는 피서용품의 가격 안정화를 위해 지역 내 공공단체에 운영을 맡기고 있다. 단체마다 5년에 한 번꼴로 순번이 오는데, 수영구협의회는 작년에 참여했다. 이는 수영구협의회의 유일한 수익 사업으로, 수익금은 라면과 쌀, 연탄을 구매해 취약계층을 돌보는 데 사용했다.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꾼다는 것. 혼자는 어렵지만 여럿의 말은 쇠도 녹이는 법이다.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토대로 좋은 활동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길 바란다. 모두가 행복한 사회를 향하여 수영구협의회가 만들어 나갈 밝은 미래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