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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운 울림
국내 최초
‘새마을인명구조단’ 창설
새마을정신으로
안전한 세상을
만들어 가다
이강우 911수색구조단장
이강우 단장은 1981년 국내 최초 민간 구조단체인
‘새마을인명구조단’을 창설하면서 인명구조에
인생을 바치기 시작했다.
사비까지 털어가며 국내외 재난·재해 현장에
두 팔 걷고 나선 지 40여 년,
그동안 인명구조에 헌신한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국민훈장 ‘석류장’을 받기도 했다.
힘들지만 남을 위해 땀을 흘릴 때가 가장 기쁘다는
이강우 단장을 만나
공동체의 안전과 행복을 지켜가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글. 이원복
사진. 홍승진
시민을 위해 만든
새마을인명구조단
지금은 ‘119’ 숫자 세 개만 누르면 언제 어디든 달려오는 119구조대가 있지만,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119는 화재 진압 및 구조 업무 중심이었기에 당시 우리나라의 응급환자 이송 체계는 전무했다. 다치거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 생기면 환자를 직접 업고 병원으로 달려가거나 택시를 타고 가야만 했다. 그마저도 6시 이후에는 대부분의 병원이 문을 닫았고, 통금제도까지 있던 때라 야간에 응급 상황이 발생하면 아픈 사람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선 이강우 단장. 그는 1981년 12월 우리나라 응급환자 수송체계의 시초가 된 새마을인명구조단을 창설하면서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살리는 데 이바지했다.
튀르키예 정부가 지원한 헬기를 타고 재난 현장에 도착한 911수색구조단
튀르키예 정부가 지원한 헬기를 타고 재난 현장에 도착한 911수색구조단
"군대 전역 후 예비군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사비를 털어서 1969년 향토예비군 군악대를 조직했습니다. 실력이 무척 좋았죠. 그러다 보니 정부 주요 행사에 초청돼 애국가와 새마을노래를 연주하는 일이 많았고 유명 인사와 친분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그때 전경환 전 새마을운동중앙본부 회장과 친분이 생겼고, 1980년 새마을운동본부 출범 후 전경환 전 회장의 요청으로 새마을운동중앙본부에서 함께 일한 적이 있습니다.”
새마을운동 현장의 사진을 촬영하는 일을 했던 이강우 단장. 사회적 인프라가 척박한 시절 그의 눈에는 국민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아이디어가 화수분처럼 떠올랐다. 당시 사람들이 연탄가스 중독으로 사망하는 일이 큰 문제였다. 하루에 몇천 명이 연탄가스에 중독되기도 했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 인명구조단의 창설을 건의했다. 예산이 내려오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했던 터라 기다릴 수 없었던 이강우 단장은 자신의 집을 팔았다.
구조 현장에서 지시하는 이강우 단장
구조 현장에서 지시하는 이강우 단장
1981년 12월 5일 새마을인명구조단 발대식
1981년 12월 5일 새마을인명구조단 발대식
5,000만 원 정도 되는 예산을 직접 마련했고 구급차 5대(일반 구급차 3대, 25인승 구급차 2대)를 샀다. 차량용 무전기도 설치했다. 당시로서는 최첨단 시스템을 갖춘 것이다. 그렇게 새마을인명구조단이 창설 후 본격적인 활동을 이어가면서 전국에 지부가 173개까지 만들어졌다. 운용되는 구급차 규모는 200대였으며, 단원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인명구조 훈련도 받고 올 만큼 활발하게 활동했다. 그 결과 응급환자 30만 명 무료 수송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새마을정신으로
구조 현장에 뛰어들다
새마을인명구조단이 유명해지면서 이강우 단장을 시기하거나 음해하는 일들이 많아졌다.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이강우 단장은 자발적인 구조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부정부패를 척결하고 현장 중심의 활동을 펼치고자 조직을 개편했다. 군인, 경찰 출신뿐만 아니라 의사, 교수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이들이 이강우 단장과 함께했다. 이들은 국내 수해 현장 등 인력이 필요한 많은 곳에 달려갔다. 이외에도 미아 찾아주기 운동, 교도소 수감자 교화, 재난·응급의료 전문 인터넷 방송국 911TV 개국, 코로나19 방역활동 등 공동체의 안전과 행복을 위해서 많은 일을 해왔다.
2023 대한민국자원봉사자 대상에서 받은 국민훈장 ‘석류장’
2023 대한민국자원봉사자 대상에서
받은 국민훈장 ‘석류장’
911수색구조단의 활동은 해외에서 두드러졌다. 본격적으로 해외 현장에 나간 것이 바로 2001년 1월 인도네시아의 수도 자카르타에 7.7 규모의 강진이 일어났을 때다. 당시 2만 5,000명이 죽고 16만 6,000명이 다쳤다. 가만히 있을 수 없던 이강우 단장은 6명의 대원과 함께 국립의료원의 의료 봉사에 함께해 현지에서 자발적인 구조 활동을 시작했다. 그렇게 2004년 스리랑카, 2005년 파키스탄 대지진, 2008년 중국 쓰촨성 대지진, 2011년 튀르키예 반 지진, 2017년 멕시코 중부 대지진, 2018년 라오스 댐 붕괴 사고, 2019년 필리핀 알베이 태풍 피해, 2022년 필리핀 루손섬 지진, 2023년 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 현장 등 총 14개국에서 인명구조와 구호 물품 지원, 피해 복구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수많은 구조 현장을 경험했지만, 이강우 단장은 그중에서도 2004년 스리랑카 구조 현장을 꼽는다.
“당시 지진해일에 휩쓸린 사람이 많았어요. 현장은 정말 참혹했죠. 시신이라도 찾으면 다행이었습니다. 구조대원 30명과 수중 구조와 방역 활동에 전념했죠. 구조 활동을 마치고 방역기 10여 대도 기증했죠. 현지 주민들이 정말 고마워하더라고요.”
방역활동을 마치고 귀국한 이강우 단장은 한 달 후 다시 스리랑카행 비행기에 몸을 실을 수밖에 없었다. 스리랑카 정부에서 911수색구조단이 다시 와 주기를 요청한 것이다. 이번에도 지원 없이 20여 명의 대원과 구조 장비를 챙겨 현장에 달려갔다. 이를 계기로 당국으로부터 감사패를 받고, 대사관에 초청되면서 한국의 위상을 드높였고, 911수색구조단 단원들은 보건복지부 장관 표창과 국무총리 표창도 받았다.
언제나 나보다는 공동체를
먼저 생각하는 마음
이강우 단장은 한평생 인명구조에 모든 것을 쏟으며 남을 위해 헌신한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12월 5일 세계자원봉사자의 날을 맞아 열린 2023 대한민국자원봉사자 대상에서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석류장’을 받았다.
“40년 넘는 세월 동안 민간 구조 활동을 이어오면서 힘든 일이 많았죠. 새마을인명구조단이 유명해지니 저를 모함하거나 구조단을 빼앗으려고 하는 사람들까지. 남에게 칭찬받고자 시작한 일은 아니지만 이렇게 훈장을 받으니 그동안 겪은 고생이 조금이나마 위로받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이강우 단장은 직접 구조 현장에 나설 뿐만 아니라, 젊은층의 인명구조 인력 양성에도 힘쓸 예정이다. 학생 때부터 인명구조 전문 인력으로 육성해 우리나라의 재난·재해 예방과 안전 체계 확립에 이바지하겠다는 생각이다. 더 나아가 해외에 인명구조센터를 만들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필리핀, 인도네시아, 네팔처럼 재난이 많이 발생하는 국가 내 여러 지역에 인명구조 인력 양성 거점을 만들어 위기 상황 발생 시 자체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겠다는 것이다.
구조 활동 계획을 설명하는 이강우 단장
구조 활동 계획을 설명하는 이강우 단장
“영어 단어 중에 ‘Foundation’이라는 단어가 있잖아요. ‘토대, 기초’라는 뜻도 있지만, ‘복지기관이나 재단’을 뜻하기도 하죠. 다른 사람을 돕는 게 우리 사회의 기초라는 의미예요. 새마을운동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죠. 새마을운동을 통해 사람들이 공동체의 중요성을 깨닫고 기부 문화도 생겼어요. 저는 새마을운동이 우리나라의 경제 발전을 이끌었다는 것보다, 우리 국민의 인식을 공동체 중심으로 변화시켰다는 게 더 큰 수확이라고 봐요.”
이어 힘이 닿는 날까지 구조 활동을 멈추지 않겠다고 말하는 이강우 단장. 마지막으로 국민의 안전을 기원하며 위급 상황 시 행동 요령도 강조했다.
“어떤 일이 발생했든지 당황하지 말고 잠시 멈춰서 딱 3초만 생각해 보세요. 어디로 피신해야 하는지, 소화기나 심장제세동기(AED)가 어디에 있었는지가 또렷하게 생각날 겁니다. 잠깐 생각한다고 해서 일이 더 커지지 않아요.”
민간 구조단을 만들고 40여 년간 국민의 안전에 힘써온 이강우 단장. 대가를 바라지 않고 이웃을 우선시한 그의 마음이 우리나라를 넘어 지구촌 많은 이들의 생명을 지켰고, 나아가 안전하고 행복한 미래를 만들어 가고 있다. 이강우 단장의 노력이 앞으로도 모두가 잘사는 공동체를 이루는 데 원동력이 되어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