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마을운동은 1970년부터 시작된 ‘잘살기 운동’이다. 활동은 각종 문서와 편지, 성공사례 원고, 사진과 영상 등으로 제작됐다. 새마을운동기록물은 성공적인 농촌 부흥의 원형을 보여주는 기록유산으로서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인정받아 2013년 6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2024년 ‘새마을 타임즈’ 코너에서는 한국 농촌 근대화의 실록인 새마을운동기록물 중 만화 이야기를 각색해 전하고자 한다.
새마을 타임즈
다시 보는 새마을운동 이야기 ep. 2
풍요를 가져다준 황금의 왕
경기 이천시 율면 석산1리 새마을지도자 이관섭
1972년 정부는 식량난 및 식량자급
문제 해결을 위해 통일벼를 보급했다.
당시 많은 새마을지도자는 통일벼를 재배해
식량난 해결 및 농가 소득 증대에 앞장섰다.
특히 경기 이천시의 이관섭 지도자는 쌀 증산을 통해
새마을운동을 성공으로 견인하며 ‘황금의 왕’이라고 불렸다.
# 1. 농업에 뜻을 두고
스스로 터득하다
소년가장이었던 이관섭 지도자는 중학교 졸업 후 안 해 본 일이 없을 만큼 고생했다. 남의 집 농사를 3년간 도맡아 하면서도 하천 부지 일부를 개간해 농사를 지으며 다양한 방법을 시도한 끝에 땅콩과 뽕나무싹을 틔우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성공의 기쁨도 잠시, 입대 영장이 나왔고 군대를 다녀온 후에야 직접 하천 부지를 개간하며 본격적으로 농업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다른 부락민들은 밭을 사 담배나 인삼을 재배했지만 이관섭 지도자는 오직 벼농사뿐이었다.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새로운 농사법을 배우고, 영농일지를 쓰면서 전문성도 키워 다른 집 논보다 쌀의 크기도 커지고 수확량도 증가시켰다.
# 2.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준
새마을지도자
1971년 새마을운동이 본격화되면서 이관섭 지도자는 새마을운동에 눈을 뜨게 되었고 농촌 소득향상에 앞장서겠다고 결심했다. 마을의 소득 증대를 위해 다수확 품종인 ‘통일벼’를 재배해야 한다고 사람들을 설득했지만, 재래종 벼에 익숙했던 이들에게는 소귀에 경 읽기와 다름 없었다. 그는 직접 보여주면 된다고 생각했다. 논이 황금빛으로 물드는 가을이 되자 그 차이가 확연히 드러났다. 1단보당(약 300평) 열다섯 가마니를 수확해 재래종 쌀보다 아홉 가마니를 더 수확한 것이다. 주민들은 이관섭 지도자의 말을 따르기 시작했고, 그를 새마을지도자로 추대했다.
# 3. 의지와 전문성으로
마을의 역사를 바꾸다
이관섭 지도자는 선진 농업인이자 새마을지도자로서 헌신적으로 마을을 이끌었다. 공동기금을 마련해 마을안길 확장, 농지정리, 전기가설, 담장 개량, 마을회관 건립 등 다양한 새마을 사업을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쌀 생산량도 늘려 1975년에는 농수산부 장관상을, ‘유신벼’를 재배한 1976년에는 경기도지사상을 받았다. 1977년, 전국 새마을지도자대회에서 전국 쌀 증산왕으로 뽑히며 산업은탑 훈장도 받았다. 마을의 쌀 생산량 증가에도 기여해 1960년대 10만 원도 안됐던 호당 소득이 평균 127만 원까지 올랐다. 이관섭 지도자의 꺾이지 않은 정신과 노력 그리고 새마을운동이 역사를 바꾼 것이다.